[횡설수설/이형삼]“北에 돌아가 네 역할 해라”

2010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과거사위)는 1975년 유죄 판결을 받은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이 조작됐다고 결론 내렸다. 이 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복역하다 풀려난 강종헌 씨는 무죄를 주장하며 재심을 청구했다. 강 씨는 4·11총선에서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18번 후보가 됐다. 그제 열린 재심 공판에는 1982년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교도소에서 강 씨와 막역하게 지냈던 김현장 씨가 증인으로 나왔다. 김 씨는 법정에서 옆에 앉은 강 씨를 향해 “북으로 돌아가 네 역할을 해라”라고 말했다.

▷김 씨는 4일자 본보 인터뷰에서 강 씨가 북한 노동당 지도위원이며 학창시절 북한에서 밀봉교육을 받은 사실을 본인에게서 직접 들었다고 밝혔다. ‘1심에선 법정을 선전장으로 활용하려고 사실을 인정했지만 2심에선 전략을 바꿔 고문에 의한 조작이라고 주장했다’는 강 씨의 옥중(獄中) 고백도 전했다. 그의 진술은 매우 구체적인 정황을 담고 있다. 재심 재판부는 강압 수사 여부와 함께 강 씨의 북한에서의 행적을 치밀하게 따져봐야 한다.

▷과거사위, 민주화보상위 등은 독재정권에 저항하다가 피해를 본 사람들의 명예회복과 보상을 위해 설치됐다. 하지만 애초 취지와는 달리 종북(從北) 세력에 면죄부를 발급하고 국민의 혈세(血稅)로 보상금을 준 사례가 적지 않다. 지하조직 ‘왕재산’을 만들고 북한에 군사 정보를 건넨 간첩, 법원이 ‘국가변란을 목적으로 한 반국가단체’로 규정한 민족민주혁명당 관련자 등을 민주화 유공자로 인정해 붉은 때를 벗겨 줬다. 이렇게 ‘민주투사’로 탈바꿈한 이들 중 상당수가 사법부에 재심을 신청해 ‘과거 세탁’을 시도한다.

▷19대 국회에 진출한 통진당 의원의 절반 가까이가 종북 논란에 휩싸여 있다. 통진당 당권파 중에 유독 종북 인사들이 많은 것은 이들이 1980년대 주사파와 맥이 닿아 있기 때문이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는 종북과 민주화 운동이 혼란스럽게 뒤섞여 있었지만 민주화 이후에는 오히려 구별하기가 쉬워졌다.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중에는 때로 과장되거나 조작된 것도 있었지만 진짜 간첩 사건도 많았다. 사법부의 판단이 한시적으로 설치된 행정부 산하 위원회의 결정에 기속(羈束)될 이유가 없다.

이형삼 논설위원 han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