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개원하는 국회에서 다룰 민간인 불법사찰 국정조사의 범위를 놓고 여야가 맞서고 있다. 새누리당은 불법사찰을 이명박 정부뿐 아니라 노무현 김대중 정부 때 것까지 포함시켜 조사하되 청와대는 조사 대상에서 제외하자고 주장한다. 반면 민주통합당은 청와대는 당연히 포함돼야 하며 조사 대상 시기는 이명박 정부에 국한해야 한다고 맞선다. 양쪽 다 자기들에게 유리한 대로 국정조사를 진행하자는 심산이다.
검찰의 두 차례 불법사찰 수사가 국민의 불신을 받고 국조(國調)로 직행한 것은 누가 봐도 의혹의 냄새가 나는 청와대의 개입 여부를 검찰이 눙치고 넘어갔기 때문이다. 검찰이 확보한 ‘공직윤리지원관실 업무추진 지휘체계’라는 문건에 대통령과 대통령실장이 사찰 내용을 보고받았음을 시사하는 문구가 들어 있다. 불법사찰 증거인멸 과정에 대통령민정수석실이 개입해 입막음용 돈까지 줬다는 폭로와 관봉(官封)이라고 찍힌 돈까지 나왔다. 청와대는 최우선적으로 조사 대상에 포함돼야 한다.
이명박 정부에서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한 일을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는 총리실 조사심의관실이 똑같이 했다. 박영선 민주당 의원이 올해 4월 현 정부의 사찰문건이라고 폭로한 2619건 가운데 80% 이상은 노 정부 때 작성된 것이다. 불법사찰과 증거인멸 의혹을 폭로한 장진수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은 노 정부에서는 조사심의관실 소속으로 똑같은 사찰 업무를 수행했다. 사법적 처벌을 위한 공소시효는 다했을지라도 국조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노무현 김대중 정부 때의 사찰도 포함시키는 것은 당연하다. 민주당에는 이해찬 대표가 친노세력을, 박지원 원내대표가 DJ세력을 대표하고 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과거사를 정리한다며 유신과 광복 전후, 일제강점기는 물론이고 100년도 더 지난 구한말 동학혁명까지 들춰냈다. 이에 비하면 두 정부 때의 사찰은 과거사라고 부를 수도 없다.
김대중 정부 때의 도청으로 국가정보원장 2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음에도 국가기관에 의한 불법사찰이 계속됐다는 데 경악을 금할 수 없다. 공무원도 아닌 재계나 종교계의 민간인이 사찰의 대상이 됐다. 사생활의 비밀은 적법한 수사에 의하지 않고는 침해할 수 없는 국민의 기본권이다. 삼권분립은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인데 사법부 수장이나 유력 국회의원이 정보 수집의 대상이 됐다. 여야는 정략을 떠나 불법사찰을 완전히 단절하는 계기로 삼겠다는 각오로 이번 국조에 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