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캐한 최루가스가 캠퍼스 향기를 앗아가던 그 시절, 소주잔을 기울이며 시국을 논하던 우리는 ‘그걸’ 이렇게 부르곤 했다. 인젝션(Injection). 누군가는 줄여서 IT라고도 했던 것 같다. 주사(注射)…. 일종의 은어이기도 했고 조롱이기도 했다.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주체(主體)사상 광풍에 대학가는 그렇게 주사를 맞은 듯 몸살을 앓았다.
4학년 때인가 친구 하숙집에서 우연히 김일성 항일무장투쟁을 미화한 비디오를 본 적이 있다. 빨치산 부대를 이끌던 김일성이 대원들과 식사를 하던 중 자신의 밥그릇에만 담긴 삶은 계란을 숟가락으로 잘라 대원들에게 나눠주자 대원들이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장면만 유독 떠오른다.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겠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1980년대 후반, 정치학도로서 금기의 영역에 대한 호기심 반, 두려움 반으로 잠시 들여다본 주체사상의 첫 느낌은 “동학의 인내천(人乃天) 사상 비슷한 건가?” 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건 착각.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 사상은 모든 사람은 존귀하고 존중받아야 한다는 인본주의에 바탕을 둔다. 주체사상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수령과 당, 인민이 뇌수인 수령을 정점으로 하나의 사회적 유기체를 이룬다는 논리로 북한 봉건체제의 통치이념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사상이랄 것도, 철학이랄 것도 없는 주체사상이라는 ‘괴물’이 대학가를 파고들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100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궁극적으론 반미주의와의 교묘한 결합이 결정적이었다고 나는 본다.
20년이 훨씬 지난 칙칙한 얘기를 꺼낸 이유는 통합진보당 사태를 보며 든 몇 가지 단상 때문이다. 이석기의 “애국가는 국가가 아니다” “종북보다 종미가 문제다”는 발언을 접하면서 “그의 머리는 대못으로 박은 듯 1980년대에 단단히 고정돼 있구나” 하는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 국기나 국가는 감성에 호소해 피지배자의 복종을 유도하는 상징조작(미란다·Miranda)이라는 어느 정치학자의 이론을 지금도 금과옥조로 받아들이고 있으리라. 미란다에 가장 탁월한 정권은 북한 김씨 일가인데…. 2일 국회 개원식에서 애국가를 떠듬떠듬 따라 부르는 골수 주사파의 모습은 영 어울리지 않았다.
이석기, 김재연 처리를 놓고 통진당은 통진당대로,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은 그들끼리 각각 제명 또는 자격심사 절차에 들어갔다는 소식이다. 이석기에게 밝은 세상으로 나와 보통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는 삶을 살라고 하기엔 너무 늦은 것 같다. 그의 사상은 화석처럼 굳어있다. 자신의 이념공동체를 떠나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사람이다. 민의의 전당에 어울리지 않는다. 조용히 자신의 삶의 터전으로 돌아가도록 하는 게 맞다. 그곳에서 ‘뇌수’ 역할을 할지, ‘본원’ 역할을 할지는 그의 몫이지만.
강기갑 혁신비상대책위원장과의 면담에서 20분간 눈물만 흘렸다는 김재연에게 연민이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검은색 상의에 보라색 미니스커트를 맞춰 입을 줄 아는 신세대 주사파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혹시 4년 의정생활을 하면서 세상 이치를 깨닫고 ‘사상의 덫’ ‘주사의 덫’에서 벗어날 수 있지는 않을까. 악성 종양이니 도려내라고 하기엔 서른두 살의 나이가 너무 젊기에 해보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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