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미국 언론에서 최고의 관심은 역시 ‘대통령선거’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의 경쟁이 뜨거워지며 끊임없이 기사가 쏟아진다. 그만큼은 아니지만, 최근 심심찮게 등장하는 화두가 하나 더 있다. 바로 ‘꿈’을 둘러싼 논란들이다. 한 미국 누리꾼은 “1963년 마틴 루서 킹 목사의 ‘나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 연설 이래 언론지상에서 꿈이란 단어를 가장 많이 접하는 것 같다”는 평을 내놓았다. 경제도 휘청대는 시국에 왜 꿈 얘기가 넘쳐날까.
첫 번째 꿈 담론은 말 그대로 잠잘 때 꾸는 꿈에 관한 것이다. 한가하게 들리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만만치 않다. 온라인매체 허핑턴포스트에 따르면 현재 약 6000만 명의 미국인이 불면증과 잦은 악몽에 시달리며, 그 수치는 갈수록 늘고 있다. 한마디로 자고 싶은데 잠이 안 오고, 겨우 잠들어도 괴롭단 뜻이다. 이쯤 되면 ‘인큐버스(incubus·夢魔)의 시대’란 말이 그리 과하지 않다.
가장 심각한 피해자는 미국의 영웅, 참전용사들이다. 미 국방부는 올해 초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복무했던 군인 70% 이상이 불면증과 악몽 탓에 일상생활 유지가 어렵다”고 보고했다. 문제가 커지자 ‘꿈 연구’로 유명한 피츠버그의과대학이 국방부로부터 400만 달러를 지원받아 해결책 마련에 나섰다. 미국 국립보건원(NIH)도 최근 수면 관련 질환을 ‘긴급 현안’으로 판정하고 전담부서를 만들었다고 한다.
두 번째 담론도 예사롭지 않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7월 2일자에서 ‘아메리칸 드림은 여전히 실재하고 있는가’라는 논쟁적 주제를 커버스토리로 다뤘다. 요점만 보자면, 오랜 세월 신화처럼 굳건했던 ‘열심히 일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미국적 가치가 21세기 들어 붕괴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조 바이든 부통령이 주재하는 백악관의 중산층 연구팀도 지난달 보고서를 통해 이 같은 문제를 짚어내고 있다.
“미국에서 중산층이란 그들의 수입보단 ‘열망(aspiration)’으로 정의된다. 자신의 집과 자동차를 소유하고, 가끔 근사한 휴가를 가며, 아이들을 대학에 보내고, 퇴직 뒤엔 편안한 노후를 즐기는 삶을 꿈꾸는 것 자체가 중산층을 규정했다. (…) 하지만 이제 그 열망은 경제침체란 현실에 부딪혀 이룰 수 없는 백일몽으로 변해버렸다. 과거 미국인들은 약 90%가 자신을 범(汎)중산층이라 여겼다. 하지만 현재 그 수치는 절반도 되질 않는다.”
결은 다르지만 둘은 닮은 구석이 많다. 일단 모두 삶을 영위하는 데 꼭 필요한 요소다. 잠을 못 자고 희망이 없다면 무슨 수로 살겠는가. 예전엔 당연시됐던 것들인데 갈수록 힘들어지는 측면도 엇비슷하다. 그리고 안타깝지만, 현재로선 딱 떨어지는 치료 백신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하지만 하나 분명한 게 있다. 잠을 포기하는 순간, 희망을 내려놓는 순간 더이상 미래는 없다. 억지로라도 잠을 청하고 악몽과 싸워야 한다. 아메리칸 드림이란 용어가 처음 등장한 건 1931년 역사학자 제임스 애덤스가 쓴 ‘미국의 서사시’란 책에서였다. 당시는 미 역사상 최악의 시기라 불린 대공황 시절이었다. 꿈이 진정 꿈인 이유는 어두운 밤을 버티는 등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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