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닫은 가게가 많아 휴일인 줄 알았다. 관광객이 몰리는 여름 휴가철인데도, 로마의 기차역과 호텔 앞에서 물이나 기념품을 파는 행상들은 오후 6시면 포장마차를 걷고 집에 갔다. 관광지의 상점이란 휴일이나 휴가철일수록 활기차야 정상이다. 오드리 헵번이 부활한다고 해도 공주의 짧고도 상큼한 사랑을 그린 ‘로마의 휴일’ 같은 영화는 다시 못 나올 것 같았다.
▷마리오 몬티 이탈리아 총리는 침체된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올 초부터 상점과 식당 바의 영업시간을 자유화했다. 그러나 로마 중소기업기구의 반대가 거셌다. “대형 슈퍼마켓만 살판나게 해 준다”는 이유에서다. 3년간 로마에서 1만 개의 소규모 상점이 문을 닫았지만 슈퍼와의 경쟁 때문이라고만 하긴 어렵다. ‘규제가 편하다’는 이탈리아 사람들의 멘붕(멘털붕괴)도 큰 원인이다. 잠도 안 자고 일하란 말이냐, 소비주의는 해법이 될 수 없다, 밤중까지 문 열고 싶으면 박물관이나 열어라, 로마는 뉴욕이 아니다…. 동네가게들의 불평불만이 끝없이 이어졌다.
▷지난해 말 몬티는 정치와 상관없는 테크노크라트 출신이라는 점 덕분에 총리 자리에 올랐다. 내년 총선 표심에 구애되지 않고 연금과 세금 같은 재정 및 규제 개혁으로 고장 난 이탈리아 경제를 구출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부패한 정관계와 마피아 같은 업계는 지연-학연-혈연으로 연결돼 “경쟁 반대”를 외치고 있다. “경쟁만이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는 깐깐한 교수 같은 몬티의 해법은 지지도가 떨어지는 추세다. 지금 이 나라에선 코미디언이자 블로거인 베페 그릴로가 이끄는 ‘오성(五星)운동당’이 제일 인기다. 우리로 치면 ‘나꼼수당’쯤 되는 셈이다.
▷유럽연합(EU) 경제 3위인 이탈리아의 국가부채 액수가 스페인의 3배다. PIGS(포르투갈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 다음 구제금융은 이탈리아라는 소문도 나돈다. 재정위기 국가들의 국채 매입과 성장정책 지지라는 EU 리더들의 해결 방안도 아직까진 ‘립 서비스’에 가깝다. 최근 재정위기를 극복한 라트비아에서 보듯, 정부가 씀씀이를 아껴 빚을 줄이고 국민은 임금 인상 절제하고 악착같이 일해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최선의 극복책이다. 영화 ‘로마의 휴일’을 본 사람들은 로맨틱한 상상으로 가득했지만 로마 시내에는 유로존 경제위기의 음울한 분위기가 깔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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