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년 만에 찾아온 최악의 가뭄으로 전국이 말랐던 게 엊그제다. 갈라진 논두렁 사진이 신문마다 실렸다. 가뭄과 거리가 멀었던 서울 도심에서도 가로수가 죽어나갔다. 그나마 요 며칠 장대비가 쏟아져 해갈에 도움이 되었다. 서서히 가뭄이 물러가니 어제까지 가뭄 대책을 마련하느라 분주했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이제 본격적인 수해 예방 계획을 짜는 데 집중하고 있다.
특히나 지난해 시간당 100mm가 넘는 폭우가 집중되면서 서울 서초구 우면산에 산사태가 발생해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한 점 때문에 재난 당국이 올해 더욱 긴장하고 있다. 정부에는 같은 피해를 두 번 당해선 안 된다는 긴박감이 감돌고 있다.
우면산에는 산사태를 막기 위한 대형 사방댐 공사가 마무리 단계이다. 각 지방자치단체는 주택이나 영세 상공인들에게 차수판(물막이판) 설치비용을 지원하고 나섰다. 차수판은 집중호우 때 건물 출입구에 설치해 외부의 물이 내부로 유입되는 것을 차단하는 시설이다. 지난해 집중 호우 때 주변이 온통 흙탕물에 휩쓸려 가는데 차수판을 세운 한 건물은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은 사진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올해 차수판 설치가 붐을 이룬 배경이다.
하지만 차수판을 바라보는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오히려 이기심의 상징처럼 느껴진다.
지난해 사진에서도 볼 수 있었듯, 자기 집에 흘러 들어오려는 물을 막아내면 그 물은 이웃의 집으로 향하게 된다. 온 동네가 모두 차수판을 세우면 어떻게 될까. 더 낮은 곳에 사는 이웃의 집과 건물로 들어가게 된다.
경기 연천군과 파주시 일대는 1990년대 말 거의 해마다 큰 홍수 피해를 봤다. 정부에서는 수조 원의 예산을 들여 농경지만 있는 곳까지도 대규모 제방을 쌓고 배수펌프장을 지었다. 지역 주민은 좋아했지만 하류 지역 주민은 “그 많은 물이 농경지로 넘치지 않고 그대로 흘러 내려오면 우리만 위험해지는 것 아니냐”고 걱정하기도 했다.
이 일대 홍수를 연구해온 장석환 대진대 교수(토목공학과)도 “상류 지역에서 일정 부분 홍수 위험을 덜어 주지 않고 무조건 하류로 흘려보내면 피해가 집중돼 예상도 못할 정도의 피해가 날 수 있다”며 “위험이 커지는 만큼 수해를 막기 위한 예산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고 지적했다.
내 집이 홍수 피해를 보지 않게 하는 방안은 중요하다. 하지만 비는 퍼붓는데 도로는 발목도 차지 않게 하고 버스와 전철도 맑았던 어제처럼 쌩쌩 달리게 만드는 데는 적잖은 비용이 들어간다. 100년, 아니 200년에 한 번 발생할지 모르는 수해를 막겠다고 대규모 배수로를 만들고 배수 펌프장을 수도 없이 지어야 할지 모른다.
20여 년 전만 해도 시간당 20mm 정도면 집중호우라고 불렀지만 이제는 시간당 100mm라는 기록적 폭우도 심심치 않게 내리는 ‘이상기후의 일상화’가 삶 속으로 들어와 버렸다. ‘어제는 가뭄, 오늘은 폭우’를 걱정해야 하듯 기후는 급변했다. 이로 인한 재난의 위험은 갈수록 커진다.
자연을 완벽하게 제어할 수 있다면야 더 바랄 게 없겠지만 예측하기도 힘든 재난 앞에서 ‘나만의 안전’을 챙기기에 앞서 ‘우리의 안전’을 고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완전 침수될 정도의 위험은 반드시 막아야겠지만 장마철이 되면 ‘지하실에는 물이 좀 찬다’라든가 ‘오전에는 도로가 통제된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재난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완벽한 통제 방법도 없다. 그 기세는 갈수록 거세지는 것도 사실이다. 일상생활 속 재난을 대하는 자세는 이제 ‘더불어 살아가기’로 바뀌어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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