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잔을 들며/김단혜]아버님이 주신 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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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7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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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단혜 수필가
김단혜 수필가
냉동실에서 하얀 봉투를 꺼낸다. 냉각기에서 나오는 서늘한 공기는 이내 나른한 기운으로 바뀐다.

그해 나는 여름의 한가운데 서 있었다. 화장솔 같은 자귀나무 꽃잎 위로 금화처럼 쏟아지던 햇살에 발길을 떼지 못했다. 챙 넓은 모자와 얼굴의 반을 가리는 선글라스로도 그 뜨거움을 막을 수 없었던 여름. 취미로 배우기 시작한 우리 춤으로 양로원을 돌며 지역봉사활동을 다니던 시절이었다. 나의 무던함과 바지런함으로 단원들의 귀여움을 한 몸에 받았다. 며느리를 대하듯 매사 신경 써 챙겨주신 분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봉사활동수기공모’에서 우수상을 받게 되었다. 부상은 상금 삼십만 원이었다. 글을 써서 받은 최초의 수입이었다. 시아버님께 자랑하자, 기뻐하시며 상금 봉투를 가져오라고 하셨다. 돈은 이미 단원들과 축하파티로 다 써 버린 뒤의 일이다. 하는 수 없이 봉투를 만들어 갖다 드렸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마음이 불편해서 괜히 말씀드렸다는 후회도 했다. 아버님은 만 원짜리 삼십 장을 그 자리에서 세어보시더니 봉투 하나를 더 내놓으셨다.

“축하한다. 이건 내가 주는 상금이다.”

잠시 아버님을 오해한 나의 속 좁음이 들통 나는 순간, 감사하다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봉투에는 빳빳한 만 원짜리 삼십 장과 함께 포기하지 말고 글을 쓰라는 격려의 편지가 들어 있었다.

초등학교 교사로 생전에 시집 한 권을 내신 아버님은 시를 쓰시면 나에게 제일 먼저 보여주셨다. 내가 시를 쓴다는 것을 아시고 함께 합동시집을 내자고 하셨다.

나의 재능을 인정해 주신 아버님의 삼십만 원은 두고두고 힘이 되었다. 작가의 길로 가는 티켓을 받은 기분이었다. 그때부터 사람들의 감성을 건드리는 촉촉한 글이 쓰고 싶었다. 삼십만 원을 어떻게 쓸까? 고민했다. 함부로 쓰고 싶지 않고 나를 위해 쓰고 싶었다. 문구점에서 편지봉투를 사서 삼십 장의 봉투에 만 원짜리 한 장씩을 넣었다. 상금 봉투를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으려고 냉동실에 보관했다. 주방의 식탁 한 귀퉁이를 빌려 습작하던 시절 글을 쓰다가 막히면 냉커피를 타기 위해 냉동실을 열면 가지런히 놓여 있던 봉투 더미. 삼십만 원은 돈 그 이상이었다. 밤잠을 설쳐가며 냉동실 문을 수시로 열던 싱싱하고 푸르던 내 습작기.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흔들리지 않고 가고 싶은 길을 향한 은밀한 희망에 가슴 설레던 나날이었다.

매일 아침 냉동실에서 봉투 한 장씩을 꺼내 핸드백에 넣고 서점으로 향하는 나의 낭만적 사치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내게로 온 서른 권의 책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어제의 내가 아니었다. 고스란히 나에게로 흐르던 시간. 때로 만원은 삼십만 원의 행복으로 이어지고 삼십만 원은 다시 만 원의 꽃으로 피어났다.

지난 주말 남편과 아버님을 뵈러 산소를 찾았다. 많은 이야기를 하였지만 하고 싶은 말을 다할 수는 없었다. 대신 남편에게 원고를 건넸다. 글을 읽어 내려가던 남편이 눈물을 글썽이더니 어깨를 들썩이기 시작했다. 산소를 내려오며 물었다.

“내 글이 그렇게 감동적이었어요?”

“아니, 아버지 생각이 나서….”

남편은 살며시 내 손을 잡는다. 아버님은 내가 오래도록 상금 삼십만 원을 기억할 줄 아셨을까? 우리의 어깨 위로 아버님의 사랑을 닮은 금빛 햇살이 느릿느릿 따라내려 왔다.

김단혜 수필가
#찻잔을 들며#김단혜#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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