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한국 프로야구 최초로 개인 통산 228세이브의 대기록을 달성한 삼성 라이온즈의 마무리 투수 오승환은 ‘돌부처’ ‘철가면’으로 불린다. 안타 하나면 동점, 역전까지 내주는 숨 막히는 위기에서도 흔들리는 기색 없이 시속 150km의 묵직한 ‘돌직구’를 던진다. 2005년 데뷔 이후 이날까지 369경기에 나가 패전을 기록한 건 12번에 불과하다.
마무리 투수는 언제 닥칠지 모를 등판의 순간을 위해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하는 비상 대기조다. 일상(日常)이 위기다. 이들에게 “공 몇 개로 억대 연봉을 챙긴다”고 하는 건 뭘 모르는 얘기다. 오승환은 지난해 말 삼성이 진행한 대학생 대상 토크콘서트 ‘열정樂서’의 연사로 나서 “그 서너 개의 공을 던지기 위해 아침에 눈뜨면 훈련을 시작하고, 경기에 들어갈 때까지 잠시도 긴장의 끈을 늦추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에게 일상이 된 위기는 우리 경제 현실의 축소판일지 모른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는 ‘상시(常時)위기’ 시대에 들어섰다. 유로존 위기 고조로 하반기(7∼12월)엔 상반기보다 경기가 나아질 것이라던 낙관론도 쏙 들어갔다. 산업연구원은 최근 올해 국내 경제가 3.2%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최근 전망치(3.3%)보다 낮다.
삼성그룹은 최근 임원들의 새벽 출근을 주문하고, 주력사인 삼성전자는 수출시장 위축과 유로화 가치 하락 같은 위기신호에 대응해 미리 짜둔 시나리오대로 대응에 나섰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해외 법인장들을 불러 “유럽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라”고 주문했다. 구본무 LG그룹 회장도 “사업 전반을 다시 점검하라”며 고삐를 죄고 있다.
위기가 상수(常數)가 된 시대에 오승환식 해법에 눈길이 간다. 그는 고교를 졸업하던 2001년 프로구단의 지명을 받지 못했다. 대학 1학년 때 팔꿈치 인대를 다쳐 큰 수술을 받았다. 그는 이후 2년간 하루 12시간씩 재활과 연습에 매달렸다. 2002년 월드컵이 한국에서 열리는 것도 거리 응원을 보고 알았을 정도로 훈련에 몰입했다. 2005년 신인왕을 거머쥐고 2006년까지 2년 연속 우승을 이끈 건 그간의 땀에 대한 응분의 보상이었다. 시련에도 굴하지 않는 강인한 의지가 오늘의 오승환을 만들었다.
정상에 섰을 때 일순간 방심하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게 경쟁의 본질이다. 기업 경영에도 일등기업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오승환도 2006년 우승을 이끈 뒤 슬럼프에 빠졌다. 열심히 연습을 했는데도 경기에선 통타(痛打)를 당했다. 과거와 똑같이 해서는 안 된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고 털어놨다. 이후 정신무장을 다시 하고 더 열심히 뛰었다는 것이다.
“프로의 세계는 모든 것이 굉장히 빨리 변하고, 약점은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파악되고, 조금이라도 빈틈을 보이면 모든 장점이 소용없을 정도로 공격을 당하게 돼 있습니다. ‘저 사람은 큰 노력 없이도 잘한다’고 짐작하는데, 알고 보면 그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 전력을 다해 달리고 있는 겁니다.”(오승환)
오승환은 강연에서 스스로를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말했다. 모자에 ‘나는 행복하다’는 글귀를 쓰고 경기에 나선 것도 몇 번의 고비를 넘기며 “안 될 이유가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긍정적인 자세는 동료들에 대한 믿음으로 이어졌다. 그는 대기록을 달성한 뒤에 “포수와 수비를 믿고 던진 것뿐”이라며 동료들을 치켜세웠다.
오승환이 절체절명의 순간 던지는 공 서너 개에는 위기시대의 생존 코드가 담겨 있다. 시련에도 굴하지 않는 강인한 의지, 끊임없는 노력, 동료에 대한 신뢰, 그리고 자신을 믿는 ‘긍정의 힘’이 그것이다. 기업들도 오승환의 위기관리에서 배울 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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