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4일 한국 시간 오후 4시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세미나가 인터넷으로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빅뱅머신(LHC·거대강입자가속기)에서 올해 보강된 데이터를 분석해, 지난해 말 힌트를 얻었던 힉스 입자를 제대로 찾아낸 것이다. 서로 다른 검출기를 이용한 두 실험팀이 경쟁 중이었는데, 이번 발표에서 두 실험팀이 모두 공교롭게도 딱 공식적 발견으로 인정받을 만큼의 결과를 얻었다. 각 팀에 3000명 이상이 참여하여 총 6000명 이상의 연구자가 얻어낸 성과다.
지난달 학회 참석차 CERN을 방문 중이던 필자는 이미 CERN의 카페테리아에서 점심시간마다 힉스 입자와 관련한 루머를 들었던 터라 공식 발표 2주 전에 힉스 입자의 발견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베이징의 중국과학원 이론물리연구소에서 이번 발표를 함께 들었다. 당시 100여 명의 교수, 연구원, 대학원생이 세미나실을 가득 채웠고, 힉스 입자의 발견을 공식 발표하자 참석자들은 미리 준비한 샴페인을 따서 돌리며 축제 분위기를 한껏 즐겼다. 은퇴가 가까운 한 교수는 이번 발견이 “1983년 W, Z보손의 발견 이후 근 30년 만에 있는 의미 있는 발견으로 인류 과학사에 남을 뜻깊은 순간”이라고 하면서 깊은 감회에 젖었다.
에든버러대의 피터 힉스는 1964년 다른 입자의 질량을 책임지는 입자를 제안했다. 이후 와인버그, 살람과 글래쇼가 표준모형에 사용했고, 고 이휘소 박사가 이를 ‘힉스’ 입자로 부르자고 제안하여 물리학계에서는 유명한 이름이 되었다. 이번 발견은 이견 없이 노벨상감이다. 이론을 내놓고 48년을 기다린 힉스(83세)를 포함해 같은 아이디어를 생각한 5명(1명은 작년에 작고)이 모두 초고령이어서 살아 있는 후보에게만 주는 노벨상을 서둘러 받게 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이르면 올가을 노벨 물리학상이 힉스 입자 관련자에게 수여될 가능성이 높다. 3명까지만 주는 노벨상 규정에 따라 힉스 외에 누가 받을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CERN의 빅뱅머신은 힉스 입자를 찾기 위해 만들어졌다. W, Z보손의 발견 직후 1984년 실험 계획이 시작되었으니 총 28년이 걸렸다. 유럽연합과 미국이 주축이 된 전 세계의 공동실험으로 한국도 수십 명의 연구원이 참여하고 있다. 이번 발견은 10조 원의 예산으로 건설하고 수십 개국의 연구원들이 30년간 준비한 실험이 맺은 결실이다.
양성자 충돌에서 힉스 입자를 발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일단 양성자의 크기가 매우 작아 27km 터널을 반대 방향으로 돌고 있는 양성자들끼리 충돌시키는 일은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바늘 두 개를 정면충돌시키는 것보다 확률적으로 더 어렵다. 양성자 충돌이 일어나도 1000억 번의 충돌에서 힉스 입자가 한 개 정도 생성된다. 이렇게 만들기 힘든 힉스 입자를 실험 2년 만에 수백, 수천 개를 만들어내 확고부동한 발견을 했다. 30년의 기간과 수천 명의 연구원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번에 나온 모든 공식 발표는 ‘힉스 입자로 추정되는 입자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표준모형은 중력을 제외한 세상의 모든 현상을 기술한다. 이 표준모형에서 아직 발견되지 않았던 유일한 입자가 힉스 입자다. 그러나 힉스 입자가 질량을 생성하는 현재의 설명이 ‘아름답지 않다’고 화장실에 비유한 노벨상 수상자가 있고, 스티븐 호킹도 같은 이유로 ‘힉스가 발견되지 않는다’에 100달러 내기를 했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나름의 취향이 있는 이론물리학자들은 표준모형이 이론의 완성이 아니며 힉스 입자가 새로운 물리현상을 동반하리라 믿는다. 힉스 입자로 추정되는 입자가 표준모형의 힉스 입자인지, 아니면 이와 유사하지만 새로운 물리현상을 동반한 힉스 입자인지를 밝히는 작업은 훨씬 더 어렵다. 본격적으로 흥미로운 연구는 이제 시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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