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토스터 만년필 잉크 보드카 맥주 가구 컴퓨터 넥타이 핸드백 향수 따위. 여러 상품 중에서도 자신이 특히 좋아하는 어떤 브랜드가 있는데, 사람마다 다르게 마련이다. 이는 능력도 안 되는데 맹목적으로 값비싼 명품만을 추구하는 왜곡된 소비중독과는 다른 건전한 소비성향을 말한다. 전자가 집착이라면 후자는 애착이다. 아서 아사 버거는 ‘애착의 대상’(엄창호 옮김·커뮤니케이션북스)에서 우리네 일상생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여러 물건을 애착의 대상으로 보았다.
‘파이롯도 만년필’ 광고(동아일보 1922년 11월 18일)를 보자. 지금도 시중에 나와 있는 파이로트 만년필의 초창기 광고로서 브랜드 이름을 헤드라인으로 썼다. 중세의 기사가 창을 들고 있듯 만년필을 들고 있는 모습을 표현하는 데 지면의 절반가량을 할애했다. ‘파이롯도 만년필’을 위풍당당하게 써보라는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전달한 셈. 기사가 입고 있는 투구와 갑옷은 물론 만년필의 펜촉에 이르기까지 섬세함이 하늘을 찌른다.
“세(世·세상)는 변(變)함니다! 성(醒·깨달음)하시오, 제씨(諸氏·여러분), 궤상(机上·책상)에 주머니에, 성실히 제씨에 활약의 계절은 래(來)함 동양 일(一·제일)의 대공장을 유(有)하고, 연 80만 본(本)! 기(旣·이미)히 외국제품을 초월(超越)함.” 요약하자면 세상의 변화에 따라 외국제품을 능가하는 만년필로 필기구를 바꾸라는 내용이다. 1920년대에 편지 쓰기가 유행이었는데, 글쓰기의 핵심 도구인 만년필은 어떤 코드가 숨어 있는 애착의 대상이었다.
사람들은 코드로 자신을 말한다. 모든 상품에는 코드가 숨어 있게 마련인데 그런 코드화된 브랜드가 자아정체성과 집단무의식을 형성한다는 버거의 주장은 일제강점기의 만년필 광고에서도 엿보인다. 어떤 것에 애착을 갖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개성도 엿볼 수 있다. 고가의 어떤 명품에 꽂혀 무조건 사고 보는 ‘묻지 마 쇼핑’은 애착하는 심리와는 거리가 멀다. 더구나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것이 아닌 물건을 사는 경우도 많다. 사방을 둘러보라! 같은 무늬의 (짝퉁) 명품 가방들만 지나다니고 가방 주인은 보이지 않는다. 애착의 대상 갖기 캠페인이라도 벌여야 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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