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이 모든 문서에 ‘위안부’(comfort women)라는 일본어 번역 표현을 쓰지 말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힐러리 장관이 국무부 관리의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위안부’ 대신 ‘강요된 성노예’(enforced sex slaves)라는 말을 쓰라고 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패트릭 벤트렐 미 국무부 대변인은 9일 “이 여성들에게 일어난 일은 비참했다. 이에 대한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은 ‘심각한 인권침해’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언급은 일본이 국가 차원에서 저지른 전시(戰時) 성범죄에 대해 인류 보편적 인권의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는 미국의 인식을 보여준다. 미 하원은 2007년 일본 정부가 제2차 세계대전 중 여성들에게 성노예를 강요한 사실을 인정하고 공식 사과하라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한 바 있다. 네덜란드 하원, 캐나다 의회, 유럽 의회도 결의안을 채택했고 유엔 인권이사회도 일본 정부에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겐바 고이치로 일본 외상은 “미 국무장관이 성적 노예라는 표현을 사용했다면 이는 틀린 표현이라고 말하겠다”고 밝혔다. 일본만이 세계가 인정하는 부끄러운 과거사를 외면하고 있다. ‘위안부’란 1931년 일본의 만주침략 이래 일본군 ‘위안소’에서 감금된 채 성노예 노릇을 강요당한 여성들을 일컫는다. 일본군은 최대 20만 명의 점령지 여성들을 성(性) 노리개로 삼았다. 수많은 한국 여성이 군수공장 등에 취직시켜 주겠다는 일제의 꾐에 빠지거나 강제동원돼 위안소로 끌려갔다.
과거엔 위안부 피해자를 ‘정신대(挺身隊)’라고 불렀지만 정신대는 노동인력으로 징발된 근로정신대를 뜻한다. ‘종군(從軍)위안부’는 ‘종군기자’처럼 자발적으로 군을 따라다녔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 일제가 만들어낸 용어다. ‘위안부’는 영어로 옮기면 자발적으로 일본군을 위안한 여성이라는 뜻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어 ‘강요된 성노예’와는 의미가 딴판이 된다.
일본은 성노예 동원이라는 반인륜 범죄에 대해 진심 어린 사과와 반성, 그리고 법적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군 성노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 정부가 제의한 정부 간 대화조차 수용하지 않았다. 일본은 오히려 미국 교민들이 현지에 세운 ‘위안부 기림비’와 주한 일본대사관 앞의 ‘위안부 평화비’ 철거를 요구하고 나선 판이다. 국제사회가 한목소리로 ‘강요된 성노예’의 심각한 인권유린을 규탄하고 있는데도 모르쇠로 일관하는 일본을 보며 생존 피해여성들은 지금도 피눈물을 흘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