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는 1960년대에 한 차례 전성기를 맞는다. ‘저 하늘에도 슬픔이’ ‘미워도 다시 한번’ 같은 히트작이 장안의 화제가 됐다. 극장 앞에는 한껏 멋을 부린 남녀가 긴 줄을 섰다. 미국 할리우드 영화도 황금기를 구가할 때였다. ‘벤허’ ‘사운드 오브 뮤직’ 같은 굵직한 작품이 국내에 상영되며 흥행몰이를 했다. 이 시기를 살았던 세대들에게 영화 관람은 거의 유일한 문화생활이었다. 모든 것이 부족했던 시절 영화는 갈증과 답답함을 달래주는 탈출구였다.
▷당시의 영화관들은 하나둘씩 사라져 갔다. 같은 극장에서 여러 영화를 보여주는 멀티플렉스 시대가 왔기 때문이다. 단성사 스카라극장 대한극장 등 오래된 극장들이 철거되고 새 건물이 들어섰다. 1910년대에 세워진 국도극장의 건물주는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되는 것을 우려해 하룻밤 사이에 극장을 허물어 버렸다. 근대문화유산이 되면 재건축이 불가능해지고 재산상 불이익을 당할까 봐 서둘러 철거한 것이다. 극장들이 현대식 건물로 바뀌면서 노년층의 추억도 함께 소멸됐다.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의 서대문아트홀이 건물 철거를 앞두고 그제 문을 닫았다. 1963년 화양극장이라는 이름으로 개관한 이 극장은 서울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던 단관 극장이었다. 이 극장 역시 멀티플렉스 극장에 밀려 겨우 명맥을 유지하다 2010년 어르신 전용 극장으로 전환했다. 노년층에게 2000원의 입장료를 받고 1950, 60년대 영화를 틀어줬다. 팝콘 대신 가래떡 3개를 1000원에 팔았다. 마지막 날 영화관을 찾은 많은 어르신이 ‘시네마 천국’을 잃는 섭섭함에 눈시울을 적셨다고 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실시한 ‘2010년 문화예술향수 실태조사’에서 60대 이상의 연간 예술행사 관람률은 28.6%에 그쳤다. 20대의 92.6%에 비해 3분의 1도 되지 않는다. 노년층은 여가 시간이 가장 많지만 문화생활에는 익숙하지 않고 그럴 만한 경제적 여유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문화예술을 감상하려면 별도의 문화예술 교육을 받는 일이 필요하다. 가난한 시대를 살았던 이들에겐 그런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 고령사회를 맞아 문화는 노인들에게 삶의 질을 높여주는 유력한 수단이다. ‘어르신극장’의 철거는 역설적으로 노년층이 문화적으로 소외되고 홀대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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