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기홍]검찰, 주저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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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7월 13일 03시 00분


이기홍 사회부장
이기홍 사회부장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관 3층에 국회의장과 부의장 집무실이 있다. 붉은 카펫이 깔린, 화려하지는 않지만 품격이 넘치는 공간이다.

입법부 권위의 상징과도 같은 그곳에서 2007년 가을 돈거래가 이뤄졌다. 이상득(SD) 당시 부의장은 집무실에서 임석 솔로몬저축은행 회장이 “3억 원을 준비해 왔다”고 하자 옆에 있던 정두언 의원에게 가서 받아오라고 시켰다. 정 의원은 국회 주차장에 가서 현금 3억 원을 건네받았다.

SD 받은 돈 대선자금 의혹

정치인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는 전혀 새롭지 않은 일이지만 당시 풍경은 어색하기 그지없다. 5선의 국회 부의장이 집무실에서? 예술가 취향 멋쟁이 국회의원이 주차장까지 직접 따라가서?

SD의 평소 성품으로 봐도 뭔가 정상적이지 않다. 코오롱에서 평사원으로 시작해 최고경영자를 오래 지낸 그는 평소 “난 실 만드는 회사 출신”이라고 강조해왔다. 기업이 이윤 한 푼을 내기 위해 얼마나 힘들게 노력하는지를 잘 안다는 뜻이다.

그런 그가 재벌도 아닌 퇴출 위기 저축은행 대표의 돈을 받았다. 너무도 평소답지 않은 쪼잔하고 서투른 풍경이다. “선거에 도움을 주고 싶다”며 돈을 가져온 임 회장은 돈을 주면서 “세무나 금융감독 당국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생기면 도와달라”는 말까지 했다. 임 회장은 정 의원의 후배가 소개한 잘 모르는 중소기업인이다. 학연 지연으로 얽혀 수십 년 밤문화를 함께해 온 의형제 같은 이의 돈을 받아도 위험한 걸 다 아는데, 뒤끝이 있을 게 분명한 돈을 덥석 문 것이다.

무엇이 그들을 그처럼 성급하고 서투르게 만들었는지는 삼척동자도 안다. 당시 SD는 이명박 캠프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6인회 멤버였고 정 의원도 MB의 핵심 측근이었다. 2002년 대선자금 파동 이후 대기업으로부터 조직적으로 돈을 모으는 게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각 캠프가 실탄 확보에 얼마나 쪼들리고 혈안이 되어 있었던가를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역시 6인회 멤버였던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도 파이시티로부터 2007년에 받은 돈을 여론조사에 썼다고 이야기했다가 대선자금 논란이 일자 개인적으로 썼다고 말을 번복한 바 있다.

검찰이 앞으로 SD가 받은 돈의 용처를 본격적으로 파헤치면 그것은 곧 대선자금의 광맥을 건드리는 일이 될 것이다. 선거를 5개월밖에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닐 것이다. 예상 못한 파장과 부작용도 있을 수 있다. ‘대선자금 수사’ 국면 자체가 정 의원이 짜놓은 각본에 말려드는 것이라는 우려도 검찰 일각에서 나온다. 정 의원은 저축은행에서 받은 돈의 책임을 모두 SD에게 돌려서 대선자금이라고 부각시켜야 자신의 책임이 가벼워진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선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검찰은 더더욱 주저함이 없어야 한다. 이번 대선에 나선 후보들 역시 자신의 돈만으로 선거를 치르기는 쉽지 않은 처지다. 대선을 치르려면 합법적인 정치자금 이외에도 비공식적으로 돈을 지출해야 하는 일이 부지기수로 많다. 지금의 주자들도 현금 동원력이 있는 중소기업이나 금융권으로부터의 유혹에서 자유롭기 힘들 것이다.

악순환 막기 위해 사용처 밝혀져야

그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라도 SD가 받은 돈의 용처가 분명하게 밝혀져야 한다. 검찰이 흐지부지 덮을 경우 돈에 목말라 있는 현재의 대선주자 캠프에 심리적 면죄부를 줄 우려도 있다.

어려운 선택 앞에서는 원칙으로 돌아가면 된다. 그 원칙은 불법 금품이 오간 사건은 당연히 용처를 밝혀내야 한다는 수사의 ABC다. 뇌관을 건드릴까 봐 공소유지에 필수적인 용처 규명을 주저할 수는 없지 않은가. 설령 이번에 뇌관을 피해 간다 해도, 다음 정권을 누가 잡든 검찰은 결국 다시 이번 사건파일을 꺼내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동안 밤낮을 잊은 채 진실 규명에 매달려온 수사단원들의 명예가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이기홍 사회부장 sechepa@donga.com
#검찰#정치자금#이상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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