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천광암]경제시계, 정치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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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7월 18일 03시 00분


천광암 경제부장
천광암 경제부장
20세기가 낳은 천재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시간이 상대적이라고 했다. 물체의 운동속도에 따라 빨리 흐르기도 하고 천천히 흐르기도 한다는 것이다. 영국의 랩가수인 DJ 베이더는 그의 곡에서 상대성이론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남자가 예쁜 여자와 한 시간을 함께 있으면 1분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뜨거운 난로 위에 1분 동안 앉아 있으면 한 시간보다 길게 느껴질 것이다. 그게 상대성이다.”

최근 경제 이슈를 둘러싼 여야 정치권의 논란을 지켜보면서 “시간은 상대적”이라는 아인슈타인과 DJ 베이더의 통찰에 공감한다. 마치 우리나라에는 ‘정치시계’와 ‘경제시계’라는 두 개의 시계가 따로 있는 듯한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경제시계의 바늘은 속도 전쟁이라는 용어가 함축하듯 눈이 핑핑 돌아갈 정도로 빨리 가는 것이 특징이다. 새 기술의 TV를 개발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보면 경제시계의 바늘이 얼마나 빨라져 왔는지를 잘 알 수 있다. 경영학자들에 따르면 1954년에는 45년이 걸렸지만, 1999년에는 10년, 2009년에는 2년, 2010년에는 6개월로 짧아졌다. 스마트폰의 신제품 교체 주기는 2, 3개월에 불과하다고 한다.

1년 중의 절반을 해외에서 보낸다는 한 기업인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생산시설이나 주요 시장이 해외에 있을 경우 정상적인 절차를 통해 관련 동향을 보고받고 대책을 마련해서는 ‘때’를 놓치게 된다. 최고경영자(CEO)가 현장에서 문제를 직접 접하고 현장에서 의사결정을 내리는 기업만이 지금의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경제시계에 비하면 한국의 정치시계는 바늘이 움직이는 속도가 한없이 느리다.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은 우리금융지주 민영화나 인천공항 지분 매각 등 주요 국책사업을 차기 정권으로 미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천공항 지분 매각이나 우리금융지주 민영화의 방향 자체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본다면 또 다른 이야기일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정권 말이라서 논의를 다음 정권으로 넘겨야 한다는 논리는 분초 단위로 경쟁이 이뤄지는 글로벌 경제의 실상을 감안할 때 너무 한가한 소리로 들린다.

은행산업을 예로 들면 현재 한국의 은행들은 100년 만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기회를 맞았다. 국제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의 평가등급을 보면 요즘 신한 국민 산업은행의 신용등급은 골드만삭스 도이체방크 BNP파리바 UBS 등 내로라하는 글로벌 투자은행들보다 높아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었다.

물론 우리 은행들이 잘해서라기보다는 외국의 경쟁 상대들이 유럽 재정·금융 위기 등으로 신뢰도에 큰 타격을 입으면서 벌어진 일이다. 그렇더라도 한국의 은행들이 상대적인 국제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임에는 틀림없다. 만약 이번 기회를 그냥 흘려보낸다면 우리 은행산업이 삼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영영 안 올지 모른다.

인천공항 문제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 만난 경제부처의 한 장관급 공직자는 “인천공항이 각종 국제평가에서 1위를 휩쓸지만 지금 추가 투자를 하지 않으면 앞으로 몇 년 안에 순위가 뚝 떨어질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출자총액제한제도 등으로 대표되는 경제민주화 논란의 경우는 느리다는 수식어조차 적절치 않아 보인다. 출자총액제한제도는 1986년 도입된 이후 완화, 폐지, 부활을 반복하다가 2009년 용도가 다해 폐지된 제도다. 민주통합당이 이런 출자총액제한제도를 간판정책의 하나로 꺼내든 것은 딱한 일이다. 바늘이 앞으로 가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까딱거리는 고장 난 벽시계를 연상시킨다.

천광암 경제부장 iam@donga.com
#상대성이론#경제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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