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임혁백]‘유신공주’ 대 ‘선거의 여왕’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7월 19일 03시 00분


임혁백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임혁백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박근혜는 대선에서만은 ‘선거의 여왕’이 아니었다. 2002년 대선 때는 선두주자였던 이회창에게 국민경선을 요구하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탈당하고 미래연합을 창당해 도전하였으나 중도 하차했다. 2007년에는 선거인단에서 근소한 차이로 이겼으나 전국적 여론조사 환산 투표에서 져 이명박에게 패배했다. 2007년의 대선후보 경선은 전국을 단일 선거구로 하는 선거에서 박근혜가 취약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대선 3수에 들어간 박근혜는 2007년의 트라우마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불통이라는 비판을 감수해가면서까지 경쟁후보들이 요구한 완전국민경선제를 한사코 거부하였다. 박근혜의 완강한 기존 룰 고수는 이재오와 정몽준 두 후보를 경선에 불참하게 만들었고, 국민경선을 흥행시켜 새누리당 지지 표를 확장할 기회를 상실하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새누리당은 박근혜의 사당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강화시켰다.

이제 박근혜에게서 4·11총선에서 보여준 화려한 선거의 여왕은 찾아볼 수 없고 불통의 유신공주만 보인다. 2012년 대선에서 선거의 여왕 박근혜에게 최대의 적(敵)은 유신공주 박근혜다. 선거의 여왕이라면 그렇게 고집스럽게 기존의 경선 룰을 고집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김문수 이재오 정몽준 등이 요구한 완전국민경선을 받아들였더라도 박근혜는 무난히 새누리당 대선후보에 당선되었을 것이고 국민경선을 치름으로써 대선에서 그녀의 경쟁력을 높여주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경선거부로 ‘불통 이미지’

그런데 박근혜는 고집스럽게 자신의 룰을 고수함으로써 경쟁자들을 떠나가게 했고, 새누리당을 박근혜의 당으로 만들어버렸다. 그 결과 새누리당은 헌누리당이 되고 말았다. 당 조직은 수평적 네트워크형 조직이 아니라 박근혜를 단일 정점으로 해서 수많은 가신이 박근혜로부터 지시를 받는 수직적 조직이 되었다. 캠페인 조직은 무거워졌고, 비대해졌고, 둔탁해졌고, 느려졌고, 의사결정 단계는 늘어가고 있다. 4·11총선에서 맹위를 떨친 작고, 빠르고, 포용적이고, 유연한 유목형 조직은 이제 찾아볼 수 없다.

조직만 변한 것이 아니다. 박근혜가 변했다. 박근혜가 내건 선거구호는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다. 그런데 그 ‘내’가 ‘국민’이 아니라 ‘박근혜’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내 꿈’이 ‘박근혜의 꿈’으로 들리는 이유는 달라진 박근혜의 모습 때문이다. 갈수록 박근혜가 꾸고 있는 꿈과 대한민국 국민이 꾸고 있는 꿈이 엇박자를 보이고 있다.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 후보는 국민의 꿈과 자신의 꿈을 일치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박근혜는 언론인과의 토론에서 5·16군사쿠데타를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공언함으로써 5·16군사쿠데타, 유신, 전두환의 쿠데타 악몽에서 이제 거의 벗어나려던 국민의 염장을 질렀다. 박정희가 산업화를 했다는 공을 인정하고 또 인정한다 하더라도 4·19혁명으로 수립된 민주정부를 전복한 군사반란 행위를 정당화해줄 수 없고 해주어서도 안 된다. 민주헌정을 전복시킨 쿠데타를 ‘최선의 선택, 바른 선택’이라고 공적인 자리에서 공언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우리 국민은 다시 군사독재 시대로 되돌아가 ‘쿠데타를 쿠데타라 부르지 못하는’ 현대판 홍길동이 될 판이다.

더구나 어머니 육영수 여사가 흉탄에 돌아가신 후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고 새마음운동, 구국여성봉사단 총재로서 한국 정치사에서 가장 암울했던 유신독재에 일정부분 책임이 있는 박근혜가 민주화된 지 사반세기가 지난 현 시점에서 5·16쿠데타와 유신을 공개적으로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는 사실 자체가 그녀가 시대착오적인 유신공주라는 것을 확인해준다. 만약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어서도 그런 발언을 한다면 군의 철저한 정치적 중립을 규정하고 있는 대한민국 헌법을 수호해야 할 책무를 지는 대통령의 헌법 위반으로 탄핵을 당해야 할 것이다.

선거의 여왕 박근혜는 한국형 복지국가 담론을 선점했고 경제민주화를 대선의 최대 승부처로 잡는 기민한 유목적 기질과 대소통자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대세론이 확산되면서 선거의 여왕은 불통의 유신공주로 바뀌어 선거조직은 관료화되고 아첨이나 하는 기득권 집단에 둘러싸이고 아버지를 보필하던 늙은 가신들이 그녀를 보좌하고 개혁적인 경제민주화 정책은 어느새 전 세계적으로 중산층과 서민의 분노의 대상이 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우자)로 회귀하고 있다.

‘과거’ 바로잡아야 대선승리 가능

그렇다면 왜 선거의 여왕이 불통의 유신공주로 변했는가. 여러 이론과 가설이 있지만 필자는 박근혜가 총선 승리에 도취되어 잘못된 과거를 바로잡으려는 선거의 여왕보다 이미 신화가 되어버린 ‘박정희 향수’에 집착하고 있는 유신공주를 선택함으로써 미래를 향해 나아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역경(易經)에 쓰여 있는 창왕찰래(彰往察來)가 말해주듯이 과거를 밝게 드러낸 뒤에야 미래로 나갈 길을 찾을 수 있다. 박근혜는 드러내어야 할 과거의 대상에 자신이 포함되더라도 과감히 과거를 바로 세워 국민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국민의 꿈’과 ‘나의 꿈’을 일치시켜야만 대선 승리를 도모할 수 있다.

임혁백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박근혜#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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