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학생들은 연애의 대상을 쉽게 만나 너무 쉽게 헤어진다. 사랑의 열병도 별로 앓지 않고. 쿨하게 끝냈다는 건 편한 이별의 다른 표현이다. 만난 지 30일째 60일째 하며 날짜를 세거나, 만난 지 100일 됐다며 ‘백일 기념식’을 하는 걸 보면 오래가는 커플이 그만큼 적다는 증거다. 1920년대 부산 지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순애보의 주인공은 신문에 광고를 자주 낸 광고주이기도 했다.
미국 의학박사 어을빈(魚乙彬)의 광고(동아일보 1924년 2월 15일)는 헤드라인에 상품(上品)이라 쓰는 것도 모자라 보재약 만병수 금계랍 위에 각각 ‘미국 상상품(上上品)’이라고 했다. VIP로는 부족해 VVIP라고 쓰는 요즘 과잉 표현의 원조 격. 보재약(補材藥)은 ‘신체의 외부와 내부를 건강케 하는 이 세상에 제일 귀중한 강장제’이고, 만병수(萬病水)라는 ‘영약(靈藥)을 복용하고 수십만 인은 견효(見效·효과를 봄)’했으며, 금계랍(金鷄納)은 ‘미국으로부터 직수입하야 발매하는 세계(세상)에 보통 금계랍이 아니’라는 것.
어을빈의 본명은 찰스 휴스테츠 어빈(Charles H. Irvin)으로, 1893년 미국 북장로회 소속의 의료 선교사로 부산에 도착했다. 병원을 설립한 그는 ‘만병수’ 약을 개발해 떼돈을 벌었고 그사이 자기 병원의 간호사 양유식과 사랑에 빠졌다. 부인과 이혼한 그는 양유식과 재혼을 했고, 1911년 이후부터 선교사가 아닌 병원 개업의로 살았다. 몇 년 후 양유식은 폐결핵을 앓아 혼자서 요양을 떠났는데, 그때 그녀는 일본인 요시하시와 눈이 맞아 동거를 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사망 소식을 전해 들은 어을빈은 그녀의 무덤에 하루도 거르지 말고 꽃다발을 갖다놓게 했고, 자신도 사흘에 한 번꼴로 묘지에 가서 통곡했다고 한다. 그녀가 자신을 버리고 요시하시와 동거했어도 사랑하는 마음이 식지 않았기 때문. 그들의 사랑은 2005년 부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때 ‘부산 아리랑’이라는 춤극으로 만들어졌다. 그런 사랑이 너무 맹목적이고 바보스럽지 않으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바보면 어떠랴. 꼭 그 사람이 아니면 더이상 사랑할 수 없다는데. 너무 쿨하게 헤어지는 요즘 학생들이 쿨하지 않은 사랑의 의미를 되새겨 보았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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