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적으로 그는 세상을 바꾸려 했다. 하지만 세상을 바꾸는 건 대통령의 몫이 아니다. 시대의 정신적 스승이나 종교 지도자의 몫에 가깝다. 5년 단임 대통령은 세상이 아니라 나라를, 그것도 조금만 바꿀 수 있을 뿐이다. 노무현 정권 내내 그에게서 느껴졌던 불화와 불안, 그리고 고독의 수면 아래에는 이런 괴리가 깔려 있다고 나는 본다.
노무현식 편 가르기 언론정책 유산
결국 그는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내렸다. 이 비극적 최후 때문에 추종자들에겐 정치 지도자뿐이 아니라 영적인 지도자로까지 부활했다. 그의 죽음은 ‘폐족(廢族)’이었던 친노 세력도 살려냈다. 그럼에도 변치 않는 사실은 있다. 그는 대통령으로선 실패했다. 오죽하면 자신도 회고록에서 “참여정부는 절반의 성공도 못했다”며 “지금 나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실패와 좌절의 기억”이라고 토로했겠는가.
이미 실패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이명박 대통령의 첫 번째 문제점을 꼽으라면 인사(人事)라는 데 이견이 별로 없다. 노무현을 실패한 대통령으로 만든 첫 번째 원인은 ‘편 가르기’였다. 동아일보는 그에 의해 ‘내편’이 아닌 ‘네 편’으로 낙인찍혔다.
당시 정치부 차장이었던 나는 툭 하면 언론중재위에 불려나갔다. 정치부 기사에 정정보도 요구 등이 접수되면 중재위에 나가 변론하는 역할이었다. 기자라면 누구나 가기를 꺼리는 그곳에 너무 자주 나가 중재위 관계자들과 친해질 정도였다. 정부기관의 정정 보도 요구가 중재위에서 관철되면 기관 평가에 가점을 주던, 황당한 시절이었다.
급기야 기자실 폐쇄의 ‘대못’까지 박았던 노무현 정부가 끝나면서 편 가르기 언론정책은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웬걸. 노무현의 죽음으로 친노 세력이 살아나 민주통합당의 주류로 부상하면서 새로운 옥죄기가 시작됐다. 노 전 대통령의 좋은 유산도 적잖은데, 유독 나쁜 유산만 왜 그렇게 빨리 물려받는지…. 그 첫째가 종합편성TV 출연 거부다. 눈 밝은 시청자는 눈치챘겠지만, 동아-조선-중앙일보의 종편TV에 야권 인사가 나오는 일은 드물다. 사실상 당론으로 종편 출연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아일보 종편TV 채널A만 해도 야권 인사 출연 섭외에 애를 먹고 있다. 그런데도 선거보도심의위원회로부터 ‘여야 출연자의 비율에 적절한 균형을 맞추라’는 ‘공정보도협조요청’ 공문을 받기도 했다. 채널A로선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같은 종편인데도 MBN은 예외로 취급된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도 최근 MBN에 출연했다. 엄밀히 말해 종편 출연 거부라기보다는 동아 조선 중앙, 이른바 동-조-중 종편 출연 거부다.
인터뷰 전날 밤 일방 취소
비단 종편의 문제만이 아니다. 동아일보는 최근 야권의 한 대선주자와 인터뷰 일정을 잡았다가 전날 밤에 일방적으로 취소를 당하기도 했다. 충분한 사과를 받았기에 이름을 밝히지는 않겠지만, 본보와의 인터뷰 일정을 공표하자 당 내외에서 ‘심각한 압력’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인터뷰나 출연 거부는 언론의 생명인 공정성을 침해해 신뢰를 잃도록 유도한다는 점에서 교묘한 언론탄압이다. 더구나 이런 일이 언론사에 대한 개인적 호오(好惡) 때문이 아니라, 특정세력에 의해 조직적으로 자행된다면 언론자유와 국민의 알권리에 대한 심대한 위협이다. 독재와 싸웠다는 이들이 독재 때나 있던 ‘보도지침’의 칼을 휘두르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세계 10위권 경제 국가에 이런 신종 언론탄압은 국격을 허물어뜨리는 일이다. 더구나 경제위기까지 몰려오는데 국민통합은커녕 과거의 ‘편 가르기’ 망령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이들에게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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