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를 처음 찾는 외국인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다. 70년 이상 공산주의를 한 나라가 맞아? 나 역시 첫인상이 그랬다. 물론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공산주의 잔재가 없지는 않다. 모스크바 같은 대도시에서도 영어 간판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호텔을 나서면 영어로 거의 소통이 불가능하다. 방문 도시를 옮겨갈 때마다 매번 거주지등록증을 발급받아야 한다. 어떤 이는 러시아인들이 잘 웃지 않는 것도 공산주의 잔재라고 말하는데, 가혹한 공산 독재체제에서 두 세대 이상을 살았으니 그럴지도 모른다.
박물관에 가야 만나는 공산주의 잔재
말로만 듣던 러시아의 변화를 현장에서 직접 목격한 것은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모스크바 중심가의 굼 백화점은 명품 백화점으로 유명하다. 입구에 들어서자 루이뷔통 샤넬 버버리 헤르메스 구치 등 세계 유명 브랜드의 상품을 파는 매장이 즐비했다. 백화점 통로는 고객과 관광객들이 뒤섞여 북새통을 이룬다. 크렘린 궁과 붉은광장 옆에 위치해 관광객들에겐 필수 방문 코스다. 이런 백화점이 소련 시절엔 변변한 물건조차 구비해놓지 못했다니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모스크바 강(江) 서안은 도심과 스카이라인이 다르다. 고층 건물들이 쑥쑥 올라가고 있다. 러시아 정부가 모스크바의 글로벌화를 위해 금융 중심지로 육성하고 있는 곳이다. 금융에 눈을 떴다는 것은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개화할 준비를 갖췄다는 의미다. 강변은 운동과 휴식을 즐기는 시민들로 넘쳐나고, 강 위는 관광객을 태운 유람선들이 빼곡하다. 제정러시아 수도였던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모스크바보다 훨씬 더 활기가 넘쳤다. 런던 파리 베를린 같은 유럽 도시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지금은 러시아에서 공산주의 잔재를 확인하려면 그야말로 박물관에나 가야 한다. 모스크바에 100개가 넘게 있던 레닌 동상은 다 철거되고 상징적으로 1개만 남았다. ‘레닌의 언덕’은 이름마저 ‘참새의 언덕’으로 바뀌었다. 공산주의 체제를 이끌어온 러시아 공산당은 두마(러시아 하원)의 제2당이지만 2011년 선거에서 450석 가운데 92석(20%)을 차지하는 데 그쳤다.
모스크바에서 북한 조선중앙통신 김병호 사장 일행을 만난 것은 우연이었다. 러시아 국영 이타르타스통신이 주최한 세계미디어정상회의에 참석차 온 것이다. 세계 유수의 언론사 대표들이 모여 미디어의 역할과 책임, 소셜미디어의 영향력 등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북한으로선 별로 할 말이 없겠지만 그래도 반가웠다. 그러나 이들의 태도는 냉랭했다. 한국 언론인들이 다가가 인사를 건네도 건성으로 받으며 접촉을 꺼렸다.
모스크바는 방사형 계획도시다. 평양은 모스크바를 본떠 만들었다고 한다. 북한은 러시아의 공산주의도 수입했다. 그러나 러시아산(産) 공산주의는 북한으로 건너가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신격화된 수령절대주의 공산독재 세습체제’로 변질됐다. 러시아가 ‘철의 장막’을 걷은 지 벌써 20년이 됐다. 그러나 북한은 아직도 세상을 향해 빗장을 걸고 있다.
北독재세력-南종북세력 달라져야
모스크바에서 386운동권 출신인 이광재 전 강원지사를 만난 것도 뜻밖이었다. 중국 칭화대에서 6개월가량 공부하고 러시아로 와 한 연구소에서 계속 공부 중이라고 했다. 그는 최근 중국 체류 결과를 담은 ‘중국에게 묻는다’란 책을 펴냈다. 국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정치권을 향해 “진보나 보수 이전에 국가가 우선이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이 전 지사가 러시아에서도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배우기를 바란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가 아직도 머릿속에서 1980년대 언저리의 낡은 ‘주사파 필름’이나 돌리고 있는 철부지 종북세력들을 깨우쳐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