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인 운전사는 뭔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먼지가 폴폴 나는 울퉁불퉁한 도로를 쾌속(快速) 질주했다. 도로의 심한 요철에 구토가 날 지경이었다. 7월 16일 오후 예루살렘.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가 모두 성지(聖地)로 여기는 예루살렘 구도심을 떠나 30분쯤 달렸을까. 높이 9m, 길이 730km의 콘크리트 장벽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고 그 위로 설치된 감시타워에서는 무장 군인들의 경계가 삼엄했다. 거대한 교도소라는 느낌을 줬다. 담 너머는 팔레스타인 웨스트뱅크다.
어렵사리 운전사에게 부탁해 접경지대에 잠시 내려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스라엘 지역에서 일용직에 종사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태운 차량들이 철저한 관리 속에 제법 활발하게 오갔다. 일을 마치고 돌아가던 한 팔레스타인 사람이 허름한 승합차에서 내리더니 필자에게 말을 걸었다. “여기 뉴욕 같지 않니?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지. 하지만 여기 사는 게 얼마나 비참한지 잘 모를 거야.” 한가롭게 기념촬영이나 하는 필자가 못마땅했나 보다. 예정에 없었지만 ‘거대한 감옥’ 방문을 결심했다.
다음 날 주이스라엘 한국대사관에서 팔레스타인 대표를 겸직하고 있는 여성준 공사참사관의 안내를 받아 팔레스타인의 행정수도 라말라를 찾았다. 방탄차량을 준비해 온 여 대표는 이-팔 경계선을 건너 과거 대규모 민중봉기(인티파다)가 벌어진 현장을 지나면서 “유서(遺書)는 쓰고 왔죠”라고 농담을 건넸다. 웨스트뱅크 지역은 과격 무장단체 하마스가 장악하고 있는 가자지구에 비해 안전하다.
성월인 라마단을 앞두고 시내 중심가인 라이언 광장 주변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나이키, 피자헛, KFC 등 미국 상점이 눈에 띄었다. 대통령 궁 북편에는 최근 독살설이 제기된 야세르 아라파트 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의 무덤이 새 단장을 거의 마치고 일반에 재공개를 앞두고 있었다. 생전에 자신이 죽거든 예루살렘의 성지 ‘하람 알샤리프’에 묻어 달라고 부탁했지만 이스라엘의 반대로 무산되자 지지자가 몰래 잠입해 흙을 훔친 뒤 아라파트 무덤에 뿌렸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국민소득 1700달러에 연간 국제원조 23억 달러로 먹고사는 팔레스타인에 한국이 본격적인 원조를 제공한 것은 2001년부터. 2010년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방문을 계기로 2015년까지 2000만 달러 지원을 약속하고 현재 이행 중이다. 2005년 반기문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 시절엔 팔레스타인 대표부도 열었다.
한국 기업의 활약도 돋보인다. 연간 5000여 대가 팔리는 팔레스타인의 자동차 시장에서 판매 1, 2위는 기아자동차(800여 대)와 현대자동차(700여 대)다. 1996년부터 16년째 현대차를 팔고 있는 아이만 소노크롯 씨는 “잔고장이 적은 데다 철저한 사후 품질관리 덕에 중동시장에서 한국 차들이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 후원으로 문을 연 ‘코리아스쿨’도 현지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중동지역에서 미국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이스라엘과 ‘시오니즘’에 대항해 성전(聖戰)을 펼치고 있는 아랍 국가들 사이에서 어정쩡한 모습을 보였던 한국에 팔레스타인은 새로운 기회의 땅이다. 전통적으로 팔레스타인과의 관계를 대(對)아랍 관계의 시금석으로 삼는 아랍 국가들은 대표부를 설치하고 교육과 민생 분야의 지원에 적극 나서는 한국을 진정한 ‘친구’로 인정하기 시작했다. 현지에서 만난 이스라엘 전문가들도 “외부 원조가 팔레스타인의 안정을 가져올 것이고 주민들도 투쟁보다는 번영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이제는 ‘미들 파워’(중견국) 외교를 자신 있게 펼칠 때가 됐다. ―라말라(팔레스타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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