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형삼]올레길 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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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7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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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말 ‘올레’는 집 앞에서 마을길까지 이어지는 골목을 뜻한다.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착안해 제주도의 도보여행 코스를 만든 게 올레길이다. ‘끊어진 길을 잇고, 잊혀진 길을 찾고, 사라진 길을 불러내’ 조성한 25개 코스가 열려 있다. 바다 산 들 오름(기생화산) 곶자왈(북방 및 남방한계 식물이 공존하는 숲) 등을 따라 걸으며 제주의 신비를 만끽할 수 있다. 올레는 ‘제주에 올래?’라는 초대의 의미도 담고 있다. 한 해 100만 명을 훌쩍 넘는 사람들이 추억 평안 건강을 찾아 올레길을 걷는다.

▷올레길은 전국적인 걷기 열풍을 불렀다. 지리산 둘레길, 강화도 둘레길, 서울 성곽길, 울산 어울길, 무등산 옛길이 잇달아 생겨났다. ‘찾은 길’ 속에 ‘만든 길’이 끼어들다 보니 자연미와 생태계를 훼손했다는 지적도 따랐다. 출판가에선 ‘걷기 예찬’류(類)의 책들이 쏟아졌다. 인터넷서점 예스24에서 ‘걷기’를 검색하면 131종의 책이 뜬다. 그중 100종이 올레길 제1코스가 개장한 2007년 9월 이후 출간됐다. 요즘 레포츠 업체들은 투박한 등산복, 등산화 대신 워킹, 트레킹에 적합한 의류와 신발을 주력 상품으로 내놓는다.

▷걸어서 세계를 일주한 프랑스 생물학자 이브 파칼레는 “우리의 지성은 우리의 걸음이 잉태한 자식”이라고 썼다. 아닌 게 아니라 예수도 부처도 걷고 또 걸으면서 깨닫고 가르쳤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걷기를 즐기지 않았다면 ‘소요(逍遙)학파’는 족적을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산책길에서 생각을 가다듬었다. ‘걷기 예찬’을 쓴 다비드 르 브르통은 “걷기는 세계를 느끼는 관능에로의 초대”라고 했다.

▷올레길을 홀로 걷던 여성이 피살됐다. 사건이 발생한 코스는 잠정 폐쇄됐다. 휴가철인데도 올레길 여행객이 크게 줄었다. 사단법인 제주올레가 몇 가지 안전수칙을 제시했다. 혼자 온 여행객은 각 코스 출발시간을 오전 9시로 맞춰 함께 걷는다, 하절기 오후 6시 및 동절기 5시 이후는 걷기를 자제한다, 혼자 걸을 때는 수시로 지인에게 위치를 알린다…. 좀 불편해도 스스로 조심하는 게 최선이다. ‘셋이 함께 걸으면 반드시 스승이 있다(三人行 必有我師)’는 말이 있듯이 여럿이 길동무를 삼으면 안전한 올레길에서 경관을 감상하고 삶의 지혜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이형삼 논설위원 hans@donga.com
#제주도#올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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