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올림픽 개막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흔히 참가에 목적이 있다고 하지만 각국 대표선수들은 금메달을 따려고 치열하게 다툰다. 올림픽에 산업종목이 있다면 누구를 대표로 보내야 할까. 우리나라의 세계 시장점유율 1위 품목은 2009년 기준으로 휴대전화, 메모리반도체, 해수담수화설비 등 121개다. 일부는 중견·중소기업이 만들지만 대부분은 대기업 제품이다. 선발전을 치른다면 글로벌 경쟁력이 있는 대기업이 국가대표로 나가지 않을까. 해외에서 우리 대기업 제품이나 광고판을 보고 가슴이 뿌듯해지는 느낌을 받았던 것처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기업이 도마에 올랐다. 이른바 ‘재벌 개혁’을 넘어 아예 해체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얼핏 선거와 재벌이 뭔 관계가 있는가 싶다. 하지만 표심을 잡아야 하는 정치권은 여야 할 것 없이 앞다퉈 경제민주화 기치를 내걸고 있다. 양극화 해소에, 복지 확대를 외치니 ‘없는 다수’는 귀가 솔깃하다. 유력 대선주자들까지 가세하면서 재벌은 공공의 적(敵)으로까지 비친다.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골목상권 잠식, 경영권 편법 승계, 중소기업 옥죄기, 배임 및 횡령 등 일부 대기업과 오너 일가의 탐욕과 탈선이 화를 자초한 측면이 있다. 먹고사는 게 급해, 나라 경제와 아들딸 일자리를 생각해 이런 행태를 알고도 모르는 체 참아 오던 국민의 반감도 높아지고 있다. 영향력이 큰 기업일수록 사회적 책임을 다하도록 단호하게 법을 집행하라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요즘 분위기만 보면 소위 경제민주화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 된 것 같다.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은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국민 행복을 위한 3대 과제 중 첫째로 경제민주화를 꼽았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도 “경제민주화는 재벌개혁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범(汎)야권 대선후보로 거론되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최근 발간된 대담집 ‘안철수의 생각’에서 ‘재벌체제의 경쟁력은 살려야 한다’면서도 “재벌은 초법적인 존재이니 기업집단법을 만들어 규제해야 한다”는 생각을 내비쳤다. 여야 유력 대선주자들의 발언으로 미뤄 누가 대선에서 이기더라도 대기업 정책은 규제 우위로 바뀔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 이명박 정부의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작은 기업이라도 창업하고 경영해 본 사람은 안다. 정치권이 기업을 키우기는 어려워도 죽이기는 쉽다는 것을. 1947년 부산에서 ‘왕자표’ 고무신 생산으로 출발해 중화학, 섬유, 건설, 금융 분야로 진출하며 한때 재계 서열 7위까지 올랐다가 전두환 정부 시절 하루아침에 공중분해된 국제그룹 사례가 잘 보여준다. 표면적인 이유는 무리한 기업 확장과 해외 공사 부실이었으나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양정모 회장이 정권에 밉보여 해체됐다는 것이 재계의 정설이다. 헌법재판소는 나중에 ‘공권력에 의한 국제그룹 해체는 위헌’이라고 결정했으나 이미 차가 떠난 뒤였다.
시대가 달라졌다고 하지만 정치의 파워는 경제와 비교가 안 된다. 최근에만 해도 정치인에게 잘 봐 달라, 살려 달라며 돈을 줬던 기업인들이 구속됐다.
기업이나 기업인에게 잘못이 있다면 합당한 책임을 묻되 기업과 오너는 구분해야 한다. 오너가 밉다고 기업까지 죽이면 안 된다. 누가 뭐래도 경기를 살리고 일자리를 늘리는 핵심 주체는 기업이다. 기업도 경제민주화라는 새로운 환경을 피할 수 없다면 기업가정신으로 재무장하고 적응하기 바란다. 위기는 기회라고 하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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