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05년 전인 1907년 8월 1일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 이날은 과거 우리가 ‘대한(大韓)’의 이름을 지킬 수 있는 힘을 상실한, 한마디로 거세(去勢)를 당한 날로 오늘날 우리가 우리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꼭 기억해야 하는 날이기도 하다.
1907년 8월 1일 오전 11시 동대문 밖 훈련원에서 대한제국 군대가 일제에 의해 강제해산 됐다. 그날 아침 맨손 훈련을 한다고 소집해 놓고 군부협판 한진창이 새로 왕위에 오른 순종황제의 군대해산 소칙을 낭독했다. 그 자리에서 한 사람 한 사람씩 계급장이 떼어지고 이들에게는 약간의 돈 몇 푼만 쥐여졌다. 해산당한 군인들은 지금의 종로와 을지로로 걸어 나와 돈을 땅바닥에 던지면서 백성들과 함께 대성통곡하였다.
황실근위 시위대 제1대대장으로서 국가보위와 황실보호 업무를 수행하던 박승환 참령은 이 소식을 듣고 “군인으로서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신하로서 충성을 다하지 못했으니, 만 번 죽은들 무엇이 아깝겠는가”라며 자결했다.
격분한 우리 군인들이 무기고를 털어 당시 숭례문 밖에 있던 일본 군대에 쳐들어갔다. 일제는 기다렸다는 듯 사격을 가했고 그 자리에서 78명이 죽었다. 한국군과 일본군 사이에 치열한 시가전이 벌어졌다. 일본군은 막강한 화력을 동원해 공격했고 탄약이 떨어진 한국군은 백병전을 감행하면서 최후의 항전을 계속했지만 패하고 말았다. 결국 대한제국의 군대는 해산되고 나라를 지킬 수 있는 힘을 상실한 대한제국은 3년 뒤 일제의 식민지가 됐다. 우리 민족은 의병, 독립군, 광복군으로 일제에 항쟁해 나갔지만 광복 이후 1948년 창군될 때까지 41년 동안 이 땅에 우리나라 군대는 없었다.
서애 유성룡 선생은 1598년 영의정에서 물러난 뒤 선대의 과오를 철저히 징계하고 후대의 후환을 경계하고자 ‘징비록’을 집필했는데, 그 핵심은 자강(自强)이었다. “강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후대는 불과 일본의 1, 2개 사단의 무력 앞에 굴복하고 만 것이다. 나라 없는 국민은 노예이며, 군대 없는 나라 또한 나라가 아니다. 국가와 군은 공동운명체다.
다행히 오늘날 대한민국은 위풍당당한 국군을 보유하고 있다. 1948년 건국과 더불어 국군이 창설됐으며, 6·25남침전쟁을 맞아 우방의 군대와 힘을 합쳐 훌륭하게 싸워 대한민국을 지켜냈다. 지금은 국토방위의 책임을 넘어 세계평화질서를 위한 평화유지군으로 국위를 높이고 있다. 군대 해산 105주년을 맞는 8월 1일. 치욕스러운 역사가 주는 쓰디쓴 교훈을 곱씹으며, 싸우면 이기는 전투형 군대로 도약하는 군의 노력에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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