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올림픽에 발맞춰 지금 영국 런던 시내 곳곳에서는 대한민국 문화축제 ‘오색찬란(五色燦爛)’ 행사가 열리고 있다. 한국문화의 속살을 보여주는 여러 행사 중 신미경 작가의 비누 조각상에 주목할 만하다. 2년이 지나면 풍화되어 거품처럼 사라질 비누 조각상을 통해 시간과 역사의 흐름을 표현했다. 19세기 중반까지 캐번디시 광장에 서 있다가 지금은 좌대만 남은 컴벌랜드 공작(Duke of Cumberland)의 기마상을 비누로 재현한 이 작품은 비누 예술의 절정을 보여주는 동시에 비누의 역사도 돌아보게 한다.
가데이(カテイ) 석검의 광고(동아일보 1924년 8월 25일)를 보자. 석검(石검)이란 명아주를 태운 재로 잿물을 받아 석회가루와 섞어서 굳혀 만든 재래식 비누다. “일본인의 피부에 제일 조흔(좋은) 얼골(얼굴) 거칠지 안는(않는) 가데이 석검”이라는 헤드라인 아래 다음과 같은 보디카피가 이어진다. “정선한 원료와 일영독(日英獨) 기사(技師)의 우수한 기술로써 합리적으로 제조한 살이 거칠지 안코(않고) 얼골이 미려(美麗)하게 되는 순량(純良·순하고 질 좋은) 석검이올시다….”
우리나라에서 광고를 하면서도 일본인의 피부에 가장 좋다고 주장했으니 모든 조선 사람을 일본인으로 간주했다고 하겠다. 기모노를 입은 일본 여인이 모델로 등장한 것도 그 근거다. 얼굴이 미려해지는 순하고 질 좋은 가데이 비누를 쓰라는 내용인데, 광고 상단에 “박래(舶來) 석검에(비누보다) 우(優)한(나은) 우량 석검”이라며 외국의 박래품보다 낫다고 강조했다. 자매품인 구라부 석검까지 소개했던 점에서 그 무렵 비누의 브랜드화가 진행되었음도 알 수 있다.
비누의 역사는 유구하다. 1세기 무렵의 학자 플리니우스의 ‘박물지’에 갈리아 사람이 비누를 발명했다는 내용이 있다. 우리는 유지와 잿물로 비누를 만들다가, 일제강점기에 가성소다가 들어오자 서양의 신기한 물질이라며 잿물 앞에 ‘양’ 자를 붙여 양잿물로 불렀다. 석검의 시절을 거쳐 최근에는 개당 2만 원이 넘는 명품비누까지 나왔으며, 나아가 비누 예술로도 각광받고 있다. 비누 예술의 핵심은 언젠가 모든 것이 사라진다는 소멸의 미학이다. 많은 것에 집착하는 우리도 언젠가는 비누 거품처럼 사라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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