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안철수의 생각’만 읽어선 국민이 판단할 수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7월 30일 03시 00분


동아일보는 28일자에 미사일 사거리 연장, 한일 정보보호협정, 제주 해군기지 건설 등 3대 외교안보 현안에 대한 여야 대선주자들의 정책을 비교하는 기획기사를 실었다. 잠재적 대선주자로 여론조사 지지율 1, 2위를 다투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측은 동아일보 취재팀에 답변을 거부했다. 안 원장 측은 “출마선언을 한 대선주자가 아니기 때문에 답을 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대선을 4개월 남짓 앞둔 시점에 여론조사 지지율 1, 2위를 다투는 유력 후보가 정책 검증에서 한발 비켜서 있는 기묘한 모양새다.

미국에선 대선 1년 전부터 여야 후보들이 치열한 정책 경쟁을 벌인다. 국민은 세계 10위권 경제의 대한민국을 5년간 이끌어갈 사령탑이 어떤 정책과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알고 싶어 한다. 여야 대선주자들이 정책 경쟁을 벌이고, 언론이 국민을 대신해 국민이 궁금해하는 것을 물어야 하는 이유다.

안 원장이 10여 일 전 펴낸 책 ‘안철수의 생각’은 정책 과제의 진단과 대안을 정치(精緻)하게 정리한 정책집이 아니라 이런저런 생각을 담은 ‘정책단상(斷想)’에 가깝다. 대부분 ‘이래서 문제다’ ‘그래서는 안 된다’고 논평하는 식이다. 구체적인 정책 내용을 분명하게 밝힌 게 없다. 제주 해군기지에 대해 “그 판단을 받아들이는 게 옳다”면서도 “설득과 소통이 생략된 채 강행된 강정마을 공사는 무리했다”고 두루뭉수리로 넘어갔다. 책 내용만으로는 제주 해군기지 공사를 계속 하자는 것인지, 주민 설득이 미흡하고 무리한 공사를 취소하자는 것인지 혼란스럽다.

비용은 들지 않고 편익만 있거나 편익은 없고 비용만 드는 정책은 찾아보기 어렵다. 비용편익 분석을 통해 구체적 정책을 실현하자면 선택의 결단이 필요한 것이다. 안 원장은 구체적인 정책 표명을 미룬 채 “세상은 공정해야 하고, 복지와 평화는 중요하며, 모든 정책에는 소통과 합의가 중요하다”는 식의 추상적 생각만 보여줬다.

‘안철수의 생각’은 4·11총선 이후 가장 중요한 쟁점으로 떠오른 통합진보당의 종북 논란도 다루지 않았다. 그를 인터뷰한 제정임 교수의 질문은 따지고 파고들기보다는 안 원장의 원론적인 의견을 얌전하게 전달하는 식이었다. 안 원장은 “이 책을 펴낸 것은 (대통령 출마에 대한) 국민의 판단을 듣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면 정책 판단이 선명해지지 않고 오히려 알쏭달쏭해진다. 이 책만으로 파악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 안 원장이 국민에게 성실히 답을 해야 옳은 태도다.

안 원장은 작년 하반기부터 수많은 언론사와 여론조사기관이 자신을 포함해 지지율 조사를 했는데도 “출마선언을 하지 않았으니 여론조사에서 나를 빼 달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 자신이 잠재적 대선주자임을 인정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여론조사에서 안 원장에게 훨씬 뒤처지는 여야 대선주자들도 한 가닥 희망을 좇아 열심히 정책 경쟁에 나서고 있는데 안 원장만 “아직 정식 출마선언을 안 했으니 구체적 정책을 내놓을 수 없다”고 연막을 피운다면 국민에게 이미지만으로 ‘깜깜이 선택’을 하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안 원장은 상식과 정의를 누구보다도 강조하는데 대선이 140여 일밖에 남지 않은 지금까지도 구체적인 정책 표명을 회피하는 것은 정치의 상식을 벗어난다. 국민의 바른 선택을 도우려는 진지함이나 정직성과도 거리가 멀다. 안 원장은 자신의 정치 무경험에 대해 ‘나쁜 정치를 안 한 것이 왜 나쁘냐’고 하지만 지금은 스스로 ‘안철수식 나쁜 정치’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성찰이 필요하다.
#안철수#안철수의 생각#대선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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