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되기는 쉬워도 부모 노릇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세 편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이른 아침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중학교 2학년 손미나 양이 목을 매달아 자살했다. 원인을 밝혀줄 단서는 손 양이 죽기 전 유서 형태로 쓴 4통의 편지. 여기엔 공통적으로 같은 반 친구 5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들은 여드름이 난 손 양을 ‘여신(여드름의 신)’이라 부르며 놀리고, 급식 식판을 엎거나 체육복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화장실에서 옷을 벗긴 뒤 사진을 찍어 돈을 가져오지 않으면 사진을 공개하겠다며 협박하고 원조교제까지 시켰다. 결국 손 양은 담임선생님에게 보낸 편지에서 “아이들이 저를 싫어해요. 제가 뭔가 잘못한 거 같아요”라며 자살을 선택했다.
“다행이다, 딸아. 이 이야기가 현실이 아니라 연극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라니 가슴을 쓸어내린다. 지금까지 1만3000여 명이 이 연극을 봤다는구나. 관객들은 자기 자식 지키기에 급급해 사건을 은폐하고 피해 학생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뻔뻔한 부모들의 태도에 혀를 차지만, 막상 자신이 가해자 부모라면 어떤 얼굴을 할까. ‘우리 아이는 절대 그럴 리 없어’라는 부질없는 믿음에 매달리겠지.”
오전 1시 반이 넘은 시각, 노숙하던 여자가 죽었다. 시작은 우발적이었다. 사촌 간이자 열다섯 살 동갑내기인 두 소년은 단지 맥주를 한 잔 더 마시고 싶었을 뿐이다. 돈을 뽑으려고 현금인출기 부스로 들어서는 순간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노숙자가 자고 있었다. 두 소년은 길가에 모아둔 폐품과 쓰레기를 노숙자에게 던지며 “더러운 거지야! 다른 곳에 가서 자란 말이야! 아니면 일을 하든가!”라고 욕설을 퍼붓고 마지막으로 석유통과 라이터를 던졌다. 섬광이 일면서 상황 종료. 이 장면은 폐쇄회로(CC)TV에 녹화됐다. 두 소년은 휴대전화로 화재 현장을 촬영하기까지 했다. 네덜란드 작가 헤르만 코흐의 ‘디너’는 부모의 맹목적 사랑과 인간의 위선을 파헤친 소설이다. 유럽에서 100만 부가 팔렸다니 공감하는 이들이 그만큼 많다는 이야기다. 당신 자식이 이런 일을 저질렀다면 이렇게 변명하지 않았을까.
“괜찮다, 아들아. 공공장소를 제멋대로 점유한 노숙자에게도 책임이 있지. 위험한 석유통을 길가에 내놓은 사람은 또 어떻고. 무엇보다 목격자를 찾아서 증거를 없애야 해.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잖니.”
마지막 이야기는 미국이 무대인 영화 ‘케빈에 대하여’다. 성공한 여행 사업가인 에바는 예상치 못한 임신으로 아들 케빈을 낳는다. 하지만 ‘난 네가 태어나기 전에 더 행복했어’라는 엄마의 메시지를 본능적으로 알아채는 케빈. 커가면서 복수라도 하듯 엄마를 괴롭히는 것에 쾌감을 느끼던 케빈은 마침내 열여섯 살 생일을 앞두고 살인마가 되기로 한다. 케빈은 ‘로빈후드’ 놀이를 하며 활쏘기를 가르쳐준 아버지와, 엄마가 사랑하는 여동생을 쏜 뒤 학교 체육관으로 가 그곳에 있던 학생들을 조준한다. 이 사건으로 가족도 경력도 모두 잃은 에바는 피해자 가족으로부터 폭행과 핍박을 당하지만 “모두 다 내 잘못”이라며 묵묵히 살아간다. 괴물을 낳은 것도 그 괴물을 돌보는 것도 모두 부모의 운명이니까. 문득 신은 부모의 자식 사랑을 어디까지 허용하는지 묻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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