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이 최고권력자 자리에 오른 뒤 첫 외교무대에서 “경제를 발전시키고 생활수준을 증진해 주민이 행복하고 문명적인 생활을 누리도록 하는 것이 당의 목표”라고 강조했다고 중국 신화통신이 전했다.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을 통해 외부 세계로 던진 메시지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김정은이 4월 15일 태양절(김일성 생일) 열병식에서 “인민이 다시는 허리띠를 졸라매게 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당의 확고한 결심”이라고 했던 것과 표현만 다를 뿐 같은 내용이다. 남한과의 체제 대결에 몰두하면서 핵무기 개발만이 미국의 침략을 분쇄할 유일한 방책이라고 큰소리쳤던 김일성-김정일 때와는 달라진 모습이다.
북한 주민이 문명생활을 누리려면 경제발전을 이뤄야 하고 그 지름길은 과감한 개혁 개방이다. 중국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되고 베트남이 비약적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시장경제를 받아들이고 외부 세계에 문호를 개방한 덕분이다. 군부독재의 상징 미얀마에 훈풍이 부는 것도 테인 세인 대통령이 민주화의 상징인 아웅산 수치 여사의 가택연금을 해제하고 정치의 자유를 일부라도 허용했기 때문이다.
김정은 체제는 협동농장의 운영방식을 변경하는 ‘새로운 경제관리체계 확립방침’을 내놓고 이미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군(軍) 주도로 마약과 위조지폐 제조 등을 통한 외화벌이를 주도한 ‘39호실’을 폐지하면서 “향후 경제개혁은 당이 주도하고 군부는 외화벌이 등에 관여하지 말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39호실은 김씨 왕조의 특수지령 수행을 주도한 핵심통치 조직 중 하나였다. 김정은의 북한이 선군(先軍)이란 국정운영 원칙을 당장 포기할 것 같지는 않지만 군부가 경제 분야까지 주도하던 방식은 탈피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에서 지난달 말까지 폭우로 주민 119명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는 가운데 평양주재 유엔 상주조정관실은 즉각적인 식량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의약품이나 식량 부족은 당장 자체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우니 외국의 지원을 솔직하게 요청하는 것이 주민의 고통을 더는 길일 것이다.
북한이 물난리 속에서도 10만여 명의 주민과 학생을 강제동원한 체제선전용 집단체조 ‘아리랑 예술축전’을 1일부터 강행한 것은 혼란스러운 신호다. 2002년 경제관리개선 조치와 2009년 화폐개혁이 실패한 것도 김씨 세습왕조의 체제안보를 보장하기 위한 모기장 속 유사(類似)개혁에 그쳤기 때문이다. 김정은의 경제와 민생 강조가 진심인지는 그의 입이 아니라 행동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