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80년 전 1930년대의 노래를 복원해 부르는 가수다. 1930년대에 불리던 근대 가요는 우리 가요의 뿌리다. 그때의 노래는 영혼으로, 가슴으로 만든 것들이어서 들을수록 사람 마음을 파고든다.
이 첨단 디지털시대에 웬 먼 옛날 노래를 부르느냐고 할지 몰라도 내겐 그런 음악을 하게 된 내 나름의 사정과 배경이 있다.
1999년에 재즈음악을 하기 위해 뉴욕으로 가고 싶었다. 이제나 저제나 비행기를 탈까 기대하고 있는데 그즈음에 아리랑 자료가 내게 쏟아졌다. 아리랑 선율이 내 가슴에 와 닿아 뉴욕 가는 것을 포기하게 되었다. 마치 운명처럼 아리랑이 내 가슴에 들어온 것이다. 아리랑에 관심을 갖다 보니 자연스럽게 근대 가요를 알고 흥얼거리게 됐다. 1930년대 음악에 관심을 가지면서 기생들의 음악, 아리랑만담, 1930년대 가요를 부르게 되었다. 2003년에 춘사 나운규의 100주년 기념 음반을 냈는데 자료 음반이라 이걸 누가 사서 듣겠나 싶어 음악을 틀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집 전세금을 빼서 ‘아리랑’이란 카페까지 열었다.
1930년대라는 시대는 시인들이 가사를 써서 한국적인 정서로 음악을 만들던 시대다. 고향을 노래하고 꽃 피고 새 우는 것을 노래하며 가슴에 꽃이 핀다는 표현을 하던 시대였다. 그 시대의 음반은 오래되어서 가사 전달이 안 되는 것이 많은데 좋은 음악들을 고르고 또 골라서 혼자 기획하고 제작하기 시작했다. 이 시대의 젊은 사람들에게 가요의 뿌리를 알려 주고 사라져 가는 정서를 알려 주고 싶었다. 남들은 뭐래도 사명감이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사람들은 생소할지 모른다. 80년 전의 음악도 들어 보지 못한 데다 풍각쟁이가 뭐냐? 만요(1930, 40년대 일제 강점기에 널리 불려진 노래)가 뭐냐? 언제나 나에게 물어본다. 풍각쟁이는 춤추고 노래하는 사람이고 그 시대를 비하하는 단어였고 만요는 만화, 만담 등 요즘 말로 퍼니(funny·웃음이 나오는)한 노래라고 하겠다.
3년 전에 나는 근대 가요 13곡을 모아 ‘풍각쟁이’란 제목의 음반을 냈다. 오빠는 풍각쟁이, 엉터리 대학생, 신접살림풍경 등의 가사를 살펴보면 참으로 그 시대의 아픔이 잘 녹아 있다. 현대적인 편곡보다 당시의 분위기를 최대한 복원하려고 노력했다. 다행히 나의 이런 노력에 공감해 주는 젊은이가 많아 고맙다. 그동안 하나의 장르로 대접받거나 음악사적으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노래들이었는데 최근 들어서는 당시 민중의 소소한 일상을 엿볼 수 있는 자산으로 재평가되어 반갑기 그지없다.
하긴 시대가 너무 빨리 지나가고 있지 않은가!
그것을 순리라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아날로그적인 정서는 우리를 고양시키고 그것은 곧 정신을 진보하게끔 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매일 밤 아리랑 카페에서 분칠하고 가면을 쓴 나는 피에로며 광대다. 나는 이 시대의 진정한 풍각쟁이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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