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이제 우리는 안다. 밋 롬니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는 미 독립전쟁이 불필요한 유혈사태였다고 믿는다. 그는 1776년 미국인이 독립을 선언하고 영국과 전쟁을 벌일 이유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점잖게 영국에 건너가 조지 3세에게 식민 통치의 잘못을 직시하게 함으로써 미국의 자유를 보장하도록 설득하는 것이 가능했다는 얘기다.
좋다. 이건 논리의 비약이라 치자. 하지만 롬니가 최근 중동 문제를 언급한 말들을 살펴보자. 그는 ‘아랍의 봄’에 똑같은 잣대를 들이댔다. 롬니는 모든 문제를 공화당의 핵심 가치인 ‘자유 의제(Freedom Agenda)’를 바탕으로 평가하고 재단한다.
롬니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자유 의제를 잘 따르며 중동정책을 펼쳤다면 리비아와 튀니지, 예멘에서 평화로운 정권 이양이 가능했을 것이라고 비난했다. 잘만 설득했다면 호스니 무바라크 전 이집트 대통령이 “훨씬 민주적인 태도로 물러났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자유 의제에 바탕을 뒀다는 부시의 중동정책이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기억한다. 당시 그 땅엔 민주주의는커녕 깡패와 다름없는 보안요원들만 활개를 쳤다. 그 독재자들은 국민이 요구한다고 결코 조용히 물러날 사람들이 아니었다.
롬니는 사업가 시절엔 철두철미한 현실주의자였다. 그런데 지금은 괜히 런던 올림픽이란 남의 축제에 찾아가선 말실수나 하고, 또 그걸 금방 철회해 사람을 당황시키는 일을 반복한다. 안타까울 정도다.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혹시 이런 실수들은 유권자의 눈길을 사로잡으려는 고심 끝에 내놓은 계책일까.
“아랍의 봄은 적절한 용어가 아니다”란 말도 마찬가지다. 그럼 가을이나 겨울이라 불러야 하나. 수천만 중동의 주민들이 피땀으로 이룩한 성과를 롬니는 이렇게 평가했다. “좀더 신중하게 혁명이 아닌 ‘사회적 발전’으로 봐야 한다.”
이런 말도 했다. “이집트에서 이슬람주의자가 대통령이 돼 크게 우려스럽다.”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이 국민적 동의 아래 민주 절차로 당선된 타국의 국가수반이란 사실은 잠시 논외로 하자. 무르시 대통령이 취임식에서 “우리 모두는 종교에 상관없이 새로운 문명을 건설할 이집트 국민일 뿐이다”라고 선언했다. 이런 게 제대로 된 정치인이 하는 발언이다.
이스라엘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를 지지한 건 그나마 이해가 간다. 이스라엘 일간지 하아레츠에 따르면 네타냐후 총리는 “영어나 미국어가 아닌 유창한 ‘공화당 말’로 롬니를 홀렸다”고 전했다. 그게 아니어도 이란 문제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조가 중요하단 측면에서 롬니의 발언이 과했다고 하긴 어렵다.
하지만 거기서 “팔레스타인은 문화적으로 열등하며, 스스로 경제적 자립이 불가능하다”는 사족은 왜 붙였는가. 이스라엘의 억압 아래 도로나 항구도 갖추지 못한 팔레스타인이 무슨 수로 싱가포르처럼 경제 발전을 이룬단 말인가.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중동사회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무슬림이다. 그들에게 자신의 발언이 어떤 반감을 일으킬지 생각해 보았는가.
중동 시민들은 최근 엄청난 역사적 성과를 거뒀다. 탐욕스러운 독재자들에 맞서 수많은 희생을 치르고 혁명을 성취했다. 아랍의 봄은 중동을 넘어 세계를 흔든 역사적 대사건이다. 그들은 자신의 능력으로 세상을 바꿨으며, 그런 삶을 살 가치가 있음을 증명했다. 아랍의 봄은 매우 적절한 이름이며, 꼭 필요한 사회현상이었다. 롬니만 그걸 모르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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