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인규]박근혜 캠프엔 개콘의 ‘박성광’이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8월 10일 03시 00분


김인규 객원논설위원·한림대 교수
김인규 객원논설위원·한림대 교수
선거는 게임이다. 모든 게임에는 상대가 있다. 내가 잘하더라도 상대가 더 잘하면 게임에서 진다. 반대로 내가 못해도 상대가 더 못하면 이긴다. 4·11총선이 좋은 예다. 새누리당의 4·11총선 승리는 새누리당이 잘해서라기보다는 야권 연대의 거듭된 실책이 가져다준 요행 덕분이었다.

‘팔친스키 3원칙’에서 배워라

승리는 사람을 교만하게 만들고 조직을 나태하게 만든다. 4·11총선 이후의 새누리당과 대선 경선에 나선 박근혜 후보 캠프가 그렇다. ‘박근혜 대세론’에 안주하던 새누리당은 작년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불어닥친 ‘안철수 태풍’의 위력 앞에 당명까지 바꿔야 했다. 하지만 요행으로 4·11총선에서 승리하자 새누리당과 박근혜 캠프는 예전의 박근혜 대세론으로 되돌아갔다.

그러다가 최근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책 출간과 더불어 TV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대선 참여 가능성을 밝히자 박근혜 대세론은 다시 흔들리고 있다.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공천헌금’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박근혜 캠프에 비상이 걸렸다.

박근혜 후보는 탄탄한 고정 지지층을 자랑한다. 캠프에는 ‘친박(親朴)’이라 불리는 충성스럽고 응집력이 강한 정치인들이 포진하고 있다. 그들은 박 후보를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을 태세다. 박근혜 캠프에는 한자리하려는 우리나라 최고 수준의 지식인들로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룬다. 그런데도 왜 박근혜 대세론은 이토록 불안한가. 베스트셀러 ‘경제학 콘서트’의 저자인 영국의 언론인 팀 하퍼드의 최근 저서 ‘어댑트(Adapt)’에서 그 해답을 구해본다.

지금 우리나라의 정치상황은 복잡하고 불확실하다. 하퍼드는 이런 상황에서 성공하려면 ‘변화를 통한 적응’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구체적으로 그는 러시아의 공학자 팔친스키의 이름을 딴 ‘팔친스키 3원칙’을 제시한다. ①변화: 새로운 아이디어로 쇄신을 시도하되, 실패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라. ②생존: 실패해도 살아남을 수 있을 규모로 쇄신하라. ③선택: 피드백을 구하고 실패에서 배워라. 박근혜 캠프는 이 세 가지 모두에서 큰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박 캠프와는 달리 팔친스키 3원칙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케이스로는 TV 예능 프로그램 ‘개그콘서트(개콘)’를 들 수 있다. 개콘은 ①‘애정남’과 같은 인기 코너를 과감히 접고 새로운 코너를 시도할 줄 안다. ②기존 코너와 새 코너를 적절히 혼합해 새 코너의 실패 가능성에 대비한다. ③새 코너 도입 시 ‘징글정글’처럼 실패한 코너에서 교훈을 얻는다. 이러한 변화를 통한 적응 덕분에 개콘은 공중파 개그 분야에서 오랫동안 독점적 지위를 누리며 20%대의 높은 시청률을 유지하고 있다.

‘가족 같은 조직’은 위험하다

하지만 박근혜 캠프는 ①참신한 인재의 수혈보다는 친박과 ‘예스맨’ 위주로 간다. ②그러다 보니 쇄신을 시도하기 어렵다. ③공천헌금 의혹과 같은 악재가 발생해도 그 일로부터 배울 줄 모른다. 일이 이렇게 된 근본 원인은 박 캠프가 ‘가족 같은 조직’이어서 그렇다.

하퍼드는 가족 같은 조직은 리더의 잘못된 생각조차 무조건적으로 동조하려는 경향이 있어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이런 위험에 빠지지 않으려면 내부 경쟁과 비판을 장려해야 한다. 개콘의 전성기를 이끄는 서수민 PD는 ‘대왕대비’라 불릴 정도로 카리스마를 지녔다고 한다. 하지만 개콘 내부의 치열한 비판과 경쟁은 서 PD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없다. 비록 연출됐다고는 하나 ‘용감한 녀석들’ 코너의 박성광은 “서수민 PD, 열심히 좀 하자. 개콘 시청률 떨어졌다”고 공개적으로 직격탄을 날린다.

박근혜 캠프에 ‘박성광’이 있는가. 없다. 그나마 쓴소리를 한다는 박 캠프의 김종인 공동선대위원장조차 박 후보에 대해 “내 말을 잘 듣는지, 다 수용했는지 아직 판단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래서는 팔친스키 3원칙에 따른 쇄신이 불가능하다.

박근혜 후보의 대선 가도에 공천헌금 의혹이라는 빨간불이 켜졌다. 이 위기를 극복하려면 먼저 친박과 예스맨 위주의 캠프 구성이 공천헌금 의혹의 원인(遠因)으로 작용했음을 깨달아야 한다. 박 후보는 지금이라도 직언을 서슴지 않는 ‘박성광’ 스타일의 인재를 구해 캠프를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캠프 내부의 경쟁과 비판을 장려하고 다양한 의견을 청취해야 한다. 그래야 쇄신이 가능하다.

개콘의 서수민 PD인들 박성광의 비판이 달갑겠는가. 하지만 시청자들이 그 비판에 열광하니까 감수하는 것이다. 박근혜 캠프에 ‘박성광’이 있다면 박 후보는 고달플지 몰라도 국민은 좋아할 것이다. 그리고 ‘박성광’의 존재는 박 후보의 ‘불통’ 이미지를 불식하는 데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김인규 객원논설위원·한림대 교수 igkim@hallym.ac.kr
#박근혜 캠프#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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