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희의 ‘광고 TALK’]<47>조미료 제국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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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8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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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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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미료를 쓰지 않으면 음식 맛을 낼 수 없을까, 아니면 우리들이 조미료 맛에 길들여진 것일까. 식재료 고유의 맛이 살아있다면 좋을 텐데 그렇지 않은 식당이 너무 많다. 심지어 조미료를 쏟아 부었는지 식재료 맛은 사라지고 조미료 냄새만 진동하는 곳도 많다. 우리나라 조미료의 역사에서 일제강점기에는 아지노모토가, 광복 후에는 ‘미원’이 조미료를 대표했다.

스즈키상점(鈴木商店)의 아지노모토 광고(동아일보 1936년 6월 25일)를 보자. 아지노모토를 쓰는 집에서는 남편이 “마누라 음식은 언제든지 맛이 있거든! 참 재주 떵어리(덩어리)란 말야!”하니까, 부인은 “아이 날마닥(날마다) 놀니시네(놀리시네) 제 층찬(칭찬) 마시고 아지노모토를 충찬허서요(칭찬하세요)”라며 부부의 사랑을 나타냈다. 아지노모토를 안 쓰는 집에서는 남편이 “이걸 어터케(어떻게) 먹으란 말야! 오늘두(오늘도) 또 식당에 가서 먹을 수박게(밖에) 업지(없지) 경을 칠 놈의 노릇!”이라며 밥상을 엎자, 부인은 “아이고머니!” 하며 몸을 피하는 장면을 제시했다.

두 가지 경우를 만화로 비교하고 이왕가어용달(李王家御用達) 즉 이(李) 왕가에서도 쓴다며 왕실의 권위를 활용했다. 식당에 가서 밥을 먹겠다는 표현에서 그 시절 대중음식점에서도 아지노모토를 애용했음을 알 수 있다. 1920∼1930년대의 아지노모토는 동아시아 지역에 조미료 하나로 맛의 제국주의를 성립시켰다. 아지노모토는 지금의 통신회사들처럼 광고를 많이 했다. 기생 문예봉이나 무용가 최승희를 모델로 기용한 포스터도 배포했고, 건물 옥상에 네온사인을 달아 옥외광고도 했다.

아지노모토는 1910년대에 광고를 시작해 광복 이후인 1950년대까지 물량 공세를 퍼부었다. 겉으로 식생활의 근대화를 표방했지만 그러는 사이 우리 입맛은 표준화되었다. 고유하게 전해오던 각 지역의 독특한 입맛은 하나로 통일되며 애매한 서울 맛이 되어버렸다. 아지노모토 광고가 조선인의 입맛을 일거에 하나의 맛으로 통일하는 사회적 기제 역할을 했던 셈. 우리가 시골 음식점에서 밥을 먹을 때 어째 서울 맛과 똑같다며 실망하는 데는 그런 사연이 스며 있다. 고유하게 전해오던 우리 입맛을 되찾기에는 너무 늦었을까?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스즈키상점#조미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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