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쟁론]대기업-고소득층 증세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8월 10일 03시 00분


《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에서는 복지 재원 등을 마련하기 위해 증세(增稅), 특히 대기업 및 고소득층에 세금을 더 거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이른바 ‘부자 증세’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중산층 이하 계층에 비해 세금을 더 부담할 능력이 있는 대기업과 부유층에 대한 세율을 높이는 것이 옳다고 강조합니다. 반면 근로소득자나 자영업자의 절반 안팎이 한 푼도 소득세를 내지 않는 왜곡된 세제(稅制) 구조를 개혁하지 않은 채 일부 대기업과 계층을 타깃으로 ‘세금 폭탄’을 던지는 정책은 국가적으로 많은 후유증을 불러올 전형적인 포퓰리즘에 불과하다는 반론도 많습니다. 동아쟁론 4회는 ‘대기업 및 고소득층 증세’에 관한 찬반입니다. 》
▼ “부자증세는 새로운 성장동력” ▼

조원희 국민대 경제학과 교수
조원희 국민대 경제학과 교수
증세는 세계적으로 그리고 한국경제의 사정을 살펴보아도 바람직한 선택이다. 그동안 신자유주의 감세정책의 혜택이 부자들과 기업에 집중되었으므로 이제부터는 부자들과 기업들로부터 우선적으로 세금을 걷는 이른바 ‘부자 증세’로 시작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이다.

장기적으로는 국민 모두 세 부담을 나눠지는 ‘보편 증세’가 바람직하지만, 그것은 새로운 성장기반과 소득기반이 확충된 이후에나 시행할 수 있다. 지금 중하층은 일자리 불안과 과다한 부채로 세금을 추가 부담할 여력이 없다.

현재 진행 중인 세계경제위기의 뿌리는 부동산 거품 붕괴와 그것이 남긴 민간의 과다채무이다. 장기적인 경기침체를 면할 수 없는 이유는 민간과 정부의 재무상태가 극히 취약하기 때문이다.

지난 30년간 친부자, 친기업 편향 정책으로 소득분배가 악화될 대로 악화되어 하층민의 소비여력은 바닥났고 중산층은 빚으로 인해 소비여력이 없는 상태이다. 기업도 투자를 망설일 수밖에 없다. 이대로 가면 모든 경제주체가 지속적으로 지출을 줄여 경제규모가 계속 쪼그라드는 디플레이션이 장기화할 수 있다. 바람직한 새로운 성장의 방식은 더이상 금융과 부동산이 아니라 일하는 사람들의 소득과 지출이 늘어 기업도 투자를 늘리는 분배와 성장의 선순환구조를 갖추는 데 있다.

그러면 이 일을 어디부터 시작해야 하는가. 바로 국가부채를 핑계로 정부지출을 줄이는 이른바 긴축(austerity)을 멈추고 부자 증세에 이어 과감한 확장재정 기조로 가는 것이다. 소비성 복지지출로 일부 분배를 개선하는 것도 해야 하지만 성장친화적인 정책, 기업투자촉진적인 정부사업으로 디플레 위험을 막으면서 전체 경제시스템을 금융주도 경제에서 벗어나게 하는 일이 중요하다.

한국경제는 2008년 세계경제 위기 이후 대기업의 경쟁력 향상과 대기업의 중소기업 쥐어짜기, 정부의 고환율정책 등에 따라 대기업 위주로 수출이 워낙 잘되어 이러한 세계적 조류에서 비켜나 있었다. 그러나 본격적인 유럽경제 위기와 미국, 중국 경제의 무기력에 직면하여 수출주도 성장도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 성장이 정체하고 부동산 시장 불황이 장기화하자 그동안 잠재된 가계부채 문제가 폭발 직전에 와 있다. 이제 진실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다행히 한국은 신성장체제를 구축하는 데서 유리한 위치에 있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비해 공공사회복지 지출이 약 9%포인트 낮은 복지후진국이다. 따라서 한국은 경제위기 국면에서 대대적인 증세와 복지지출 증대로 복지국가를 구축할 뿐 아니라 경제위기의 파고도 넘는 일거양득의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소득세 최고세율은 38%에서 조만간 40%까지 끌어올리고 주로 중상층에 돌아가는 소득세 감면혜택은 줄여나가야 한다. 중상층에 대한 공공복지가 거의 없는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각종 소득세 감면혜택(2010년 기준 총소득대비 공제율 21.7%)을 주고 있는데 그 결과 미국의 명목 소득세율은 세계적으로도 높지만 실효세율은 15.3%로 형편없이 낮다.

우리나라의 소득세는 공제율이 45.3%에 달하고 실효세율은 4.1%에 불과하다. 그 혜택이 중상위 소득계층에 집중된다. 금융소득 분리과세도 세율을 현행 14%에서 더 높이거나 종합과세 해야 한다. 대기업에 혜택이 집중되는 법인세 감면혜택도 줄이고 세율도 세계적 추세에 맞추어 서서히 끌어올려야 한다. 부가가치세 같은 간접세도 증대 여지가 있으나 이는 보편 증세에 해당하므로 앞서 말한 대로 국민의 소득기반이 충실화된 뒤에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부자 증세와 탈루소득 포착률의 증대 등을 통해 마련되는 신규 재원은 망가질 대로 망가진 서민생활을 위해 투입되어야 한다. 보편복지의 정신에 따라 무상급식, 무상보육, 청년고용, 실업부조, 직업훈련, 기초노령연금 인상, 탁아소, 유치원 같은 공공 인프라 투자 등에 대대적으로 투입되어야 한다.

분배(복지)와 성장이 유기적으로 통합된 북유럽, 예를 들어 스웨덴은 2008년 위기 이전에도 유럽에서 가장 경제성과가 높았을 뿐 아니라 위기 이후 대응능력에서도 최상위를 기록하고 있다. 아시아에서도 우리가 앞장서서 이 길로 나아가야 한다.

조원희 국민대 경제학과 교수
:: 필자 소개 ::

서울대 경제학 석사를 거쳐 영국 런던대 버벡칼리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제전문가네트워크 대안연대회의 운영위원장, 사단법인 금융경제연구소 소장을 역임했다. 현재 복지국가소사이어티 편집위원장을 맡고 있다.
▼ “대기업 때리기 희생자는 서민” ▼

김영봉 세종대 석좌교수·경제학
김영봉 세종대 석좌교수·경제학
대선이 가까워지며 정치가들의 포퓰리즘 행태가 진면목을 드러내고 있다. 민주당은 “1% 고소득자와 슈퍼 대기업에 증세하는 법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새누리당 의원들도 대기업 출자와 의결권을 제한하는 ‘경제민주화 3호 법안’을 발의했다.

이 제안들의 본심은 ‘경제적 승자(勝者)를 때려 표를 얻자’는 네거티브 포퓰리즘이다. 정치가들이 대기업을 악(惡)으로 지목하면 국민은 대기업을 타도할 대상으로 인식하게 된다. 이렇게 저주받는 땅에서 대기업은 결국 고사(枯死)를 면치 못할 것이다. 국가의 ‘왕따’를 받는 기업들이 국내에 남아 세금을 낼 이유도 없다. 대기업들이 사라지면 일자리 투자 복지재원 등은 어디서 구할 것인가.

대기업은 우리나라에서는 얻어맞는 존재지만 세계 어디서나 투자, 고용 및 세수 창출의 견인차로 인정받고 있다. 세계 모든 국가와 정부가 법인세 인하, 인센티브 제공, 기타 갖은 유인수단으로 기업 유치에 나서는 이유다. 우리 정치가들이 부자·대기업 징벌까지 득표수단으로 삼는 것은 경제상식 부족은 물론 리더십 자질까지 얼마나 저급한 수준인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의 대선 판은 지금 여당 야당 가릴 것 없는 복지공약 살포 향연장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도 이제 유럽형 ‘복지대국의 길’에 확실히 들어섰다고 할 수 있다. 국회의원들이 국민복지에 관심을 갖는 것을 시비할 일은 아니지만 이 ‘따뜻한 의도’는 세금이 걷히고 재정이 건전해지는 경제에서나 가능하다. 우리 정치가들의 문제는 이들이 과연 이런 상식의 바탕 위에 복지문제를 다루냐는 것이다.

복지재정에는 하나의 철칙(鐵則)이 존재한다. 증가를 거듭해 거대한 재정적자와 국가채무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이는 국가가 한번 내준 복지는 ‘국민의 권리’가 된다는 의회민주주의 체제의 성격에 연유한다. 미국에서도 복지제도는 ‘권리(entitlements)’로 통칭되는데, 이는 ‘사유재산권’과 같이 국민이 취득한 권리임을 의미한다. 국민들로부터 이 권리를 다시 회수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며, 따라서 복지재정회계에는 새 청구서만 쌓이게 되는 것이다.

더욱 우리처럼 정치의 위세가 등등한 나라에서 이런 상식이나 재정의 기율(紀律) 따위가 존립하겠는가.

오늘날 재정지출이 무한대로 늘어나 국가 파탄과 국민 타락의 양상을 보이는 사례가 그리스 스페인 등이다. 이 두 나라는 금년 봄 똑같이 52.1%의 청년실업률을 기록했다. 국가경제가 추락해 실업이 늘고 복지재원이 고갈되면 최대 희생자는 이처럼 복지의 대상인 서민과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가 된다. 복지주의가 스스로 제 눈을 찌르는 모습 아닌가.

정치가들의 호의로 만들어진 복지 국가가 실제로 국민에게 만족한 복지와 일자리를 제공하는지 아닌지는 각종 사실이 판단해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3개국의 평균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지출 비율은 1960년 27%에서 1996년 48%로 증가했다. 이 비율이 25% 미만인 나라의 평균 경제성장률은 6.6%였지만, 30∼40%일 경우 3.8%, 60% 이상은 1.6%로 낮아진다. 즉 정부가 커질수록 성장률은 낮아졌다.

조사를 시행한 미국 상원 합동경제위원회(JEC)는 이들 정부의 지출이 늘어난 것은 거의 복지지출 때문이며, 복지지출 증가로 공공부문이 비대해지면 결국 민간부문에서의 생산성 성장을 잠식했다고 밝혔다. 과도한 복지지출이 민간기업의 투자, 고용 역량을 파괴시켜 성장률 하락에 따른 빈곤 및 실업증대를 가져오는 것이다.

전 세계가 불황의 늪에 빠져있는 요즘 무역규모가 연 1조 달러를 넘는 대한민국 호의 앞날도 먹구름에 쌓여있다. 국민의 살려달라는 비명이 얼마나 몰아칠지 알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믿을 것은 오직 나라의 곳간뿐인데 복지 및 민생 재정 수요는 앞으로 확대일로를 걷는 반면 경제성장 잠재력 하락으로 기업과 국민의 담세능력은 점차 낮아진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미 적자재정이 확대 재생산되는 구조에 돌입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 대선후보나 국회의원들이 국민에게 호소할 것은 첫째도 성장, 둘째도 성장이지 무책임한 기업 때리기나 복지 살포의 약속이 아니다.

김영봉 세종대 석좌교수·경제학
:: 필자 소개 ::

연세대 경제학과를 나와 미국 콜로라도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로 30여 년을 재직했다. 현재 중앙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세종대 경제통상학과 석좌교수로 있다.
#대기업#고소득층 증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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