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속에서 진실을 찾아가는 것만큼 어려우면서도 즐거운 일은 없다. 보이는 진실이 아니라 내면의 진실을 담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처음 만난 건 1996년이었다. 그때 한 사회평론잡지의 사진화보 취재를 위해 할머니들이 있는 ‘나눔의 집’을 찾았다. 그 뒤로 17년 동안 전국에 계시는 할머니들을 만났다. 처음엔 할머니들의 낯가림이 심했다. 하지만 점차 가까워지면서 아직까지 지워지지 않는 할머니들의 고통과 한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2001년부터는 중국에 살고 있는 할머니들과도 만났다. 나라 없이 떠도는 그들의 비참한 실상은 과거의 삶을 그대로 연장시키고 있었다. 그런 할머니들을 보며 이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고민했다. 우선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사진으로 그들의 존재를 알리자고 결심했다.
나는 지난해부터 일본 전역을 돌며 10여 차례 ‘위안부’ 강연회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마다 느낀 것이 있었다. 많은 일본인이 위안부에 대한 왜곡된 역사 교육, 일본 정부로부터 차단된 정보와 스스로의 무관심으로 인해 전쟁 범죄와 위안부 문제를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 역시 말도 안 되는 훼방에 시달렸다.
도쿄 니콘살롱에서의 위안부 할머니 사진전은 지난해 12월, 5명의 저명한 일본 사진가와 평론가의 심사에 따라 올 1월에 결정된 일이었다. 그런데 5월 니콘 측으로부터 돌연 이유 없이 취소 통보를 받았다. 여러 차례 대화를 요구했지만 묵살 당했다. 결국 도쿄지방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하기에 이르렀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전시를 성사시킬 수 있었다. 전 세계 사진가들은 표현의 자유를 검열하는 니콘의 행동에 반대하는 서명 운동을 벌이며 부당한 전시 취소에 항의했다.
재판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도 드러났다. 단순히 일본 우익 단체들의 반대가 아니라 군수업체 미쓰비시그룹의 지시로 사진전이 중단된 것이었다. 니콘은 한반도 강점의 첨병 역할을 했던 전범기업 미쓰비시의 계열사였다. 니콘 역시 과거 망원경, 잠망경 등 군수광학렌즈를 만들던 곳이었다. 그들은 일본 군국주의의 치부를 드러내기 싫었던 것이다. 아직까지도 미쓰비시그룹과 니콘은 반성 없이 사진전을 계속해서 훼방하고 있다. 9월에 열기로 예정돼 있던 오사카 니콘살롱 전시 역시 장소 제공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도쿄 니콘살롱 전시는 2주 동안 7900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대부분 일본인이었는데20, 30대가 관람객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관심이 높았다. 이들은 위안부에 대해 잘 몰랐는데 사진을 통해 관심을 갖게 됐고, 앞으로 자신이 어떤 실천을 하면 좋을지도 물었다. 사진전이 일본 곳곳에서 계속 이어진다면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는 데 큰 힘이 되리라는 희망을 체험했다.
이번에 나는 서울 통의동 갤러리 류가헌에서 ‘겹겹-중국에 남겨진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라는 제목으로 26일까지 사진전을 연다. ‘겹겹’의 의미는 여러 가지가 있다. 할머니들의 깊게 팬 주름과 가슴 속 깊이 쌓여 온 한을 뜻하기도 하지만 겹겹프로젝트 사진전을 통해 작은 힘을 모아 큰 힘을 만들어 일본을 비롯한 전 세계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리고 해결의 실마리를 만들어 가는 데 의미가 있다.
가해자 일본 정부는 그들을 한낱 매춘부로 내몰며, 전쟁 범죄를 부인한다. 역사를 왜곡하고, 피해 여성들의 인권을 또다시 짓밟고 있다. 이제 살아계신 피해자 할머니가 그리 많지 않다. 고통 속에서 살고 있는 그들을 우리가 기억하고 힘을 쓰지 않는다면 역사의 진실은 영원히 사라질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과거가 아니다. 현재까지 이어져 오는 전쟁과 여성인권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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