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정양환]천사들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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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8월 13일 03시 00분


정양환 국제부 기자
정양환 국제부 기자
요즘 미국은 총기 난사로 꽤 시끄럽다. 총 관련 사고가 잦은 나라지만, 연달아 애꿎은 목숨들이 희생돼 그들도 충격이 큰 모양이다. 미 시사주간지 타임은 ‘살인마가 나오기 전에 먼저 찾아낼 방법은 없을까’란 개탄에 가까운 기사를 싣기도 했다. 결론만 따지자면, 많은 연구에도 “현재로선 불가능”하다.

지난달 20일 콜로라도 영화관 건이든 7일 위스콘신 시크교 사건이든, 이런 일이 벌어지면 ‘관심의 흐름’은 엇비슷하다. 일단 범인은 누구인지, 왜 그랬는지 궁금하다. 희생자들의 안타까운 사연도 등장한다. 현상 분석과 대책 마련이 뒤따른다. 하나 더, 불행 뒤에 숨겨졌던 ‘소리 없는 영웅’을 찾아내 칭송한다.

두 사건은 흔치 않게 어린이들이 주목받았다. 콜로라도에선 케일런이란 열세 살 소녀가 회자됐다. 희생자 가운데 가장 어렸던 베로니카(6세)를 기억하는가. 아이가 피격됐을 당시 주위 어른들은 두려움에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케일런은 달랐다. 한걸음에 달려가 베로니카를 감싸 안았고, 배운 적도 없는 심폐소생술을 시도했다. 범인이 사라진 듯하자 “긴급환자가 있다”고 소리쳐 재빨리 병원에 옮겼다. 케일런은 뒤에 CBS뉴스와 만나 “TV에서 본 걸 따라했을 뿐”이라며 “칭찬받았지만 (베로니카가) 결국 세상을 떠나 마음이 아프다”며 울먹거렸다.

시크교 현장에선 11세, 9세 남매가 장한 일을 했다. 아바이와 아마나트는 마당에서 놀다 범인이 총을 쏘며 들어오는 모습을 목격했다. 깜짝 놀라 울음이 터졌지만 둘은 곧장 사원 안으로 달려갔다. 폭죽놀이인가 싶어 무심하던 사람들을 “총 든 사내가 온다”며 대피시켜 더 큰 희생을 막았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그 와중에 아마나트는 부모 목숨도 구했다. 몇몇 어른과 뒤편 창고로 도망친 뒤, 한 아줌마의 휴대전화를 빌려 “사건이 벌어져 숨었으니 오지 마라”고 엄마에게 문자를 보냈다. 아버지 발지트 싱 씨는 “음식을 가져오다 입구에서 (문자를) 받곤 가까스로 화를 면했다”고 말했다.

어른 뺨치는 아이들의 대처에 현지 언론은 찬양 일색이다. ‘천사의 강림’이란 거창한 표현도 눈에 띄고, 슈퍼 히어로가 떼로 나오는 만화 ‘저스티스 리그’에 빗대 ‘저스티스 키즈(정의의 아이들)’라고도 불렀다. 하긴, 호들갑 좀 떨면 어떤가. 참화를 겪은 마당에 ‘그래도 세상은 살 만하다’고 위로받고 싶은 게 인지상정. 게다가 어린 새싹들이 이리도 의젓하니 고마울 따름이다.

다만 살짝 궁금하다. 꼬마들이 어디서 이런 용기가 샘솟았을까. 텍사스주립대 아동심리연구팀은 이를 ‘동화(童話)적 세계관’의 발현이라 보았다. 아이들은 착한 사람은 상을 받고 남을 도우면 행복해지는 동화 속 가치에 따라 행동한다고 설명했다. 위기에 빠져도 끝내 주인공은 살아남는 결말 역시 두려움을 떨치게 만드는 작용을 한단다.

아이들이 대견하지만 뒷맛은 씁쓸하다. 방송을 보면 부모들은 “자랑스럽다”라면서도 눈빛이 흔들렸다. 왜 아니겠는가. 자칫하면 그 조막만 한 것들이 다칠 뻔했는데. 콜로라도 사건 추도식에서 마이클 워커 목사는 “지옥에서 피로 물든 아이를 안은 소녀를 떠올려 보라”며 “이건 미담이 아니라 비극”이라고 꼬집었다. 애들한테서 위안을 찾지 마라. 자꾸만 아이들이 이런 지경에 처하는 현실을 곱씹을 때다.

정양환 국제부 기자 ray@donga.com
#미국#총기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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