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허승호]許이병의 휴대전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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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8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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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최전방에서 박격포병으로 근무하다가 이달 초 첫 휴가를 나온 허(許) 이병이 집에 와서 가장 먼저 찾은 것은 휴대전화다. 허 이병은 부모가 자신의 부대로 면회 오기로 했을 때도 “내 휴대전화를 ‘만땅 충전’해 와달라”고 거듭 부탁했다. 그는 신병훈련소 입소 때 휴대전화를 갖고 갔지만 바로 집으로 배달돼 왔다.

▷허 이병은 첫 휴가를 즐기는 중에 ‘군 장병의 스마트폰 때문에 군 보안이 줄줄 새고 있다’는 신문 기사(동아일보 8월 4일자 1면)를 읽었다. 병사들이 스마트폰을 이용해 훈련 장면이나 무기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렸다는 내용이었다. 한 얼빠진 중위는 야간훈련 나가는 장갑차가 줄지어 선 사진과 함께 “중대전술 & 대대종합전술훈련 2주일짜리 다녀오겠습니당”이라는 메시지를 페이스북에 올렸다. 부대마다 다르겠지만 신세대 사병들이 스마트폰을 몰래 영내에 반입하는 사례가 있으며 “내무반원의 3분의 1은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다”는 전역 병사의 증언이 보도되기도 했다.

▷군대에서는 모든 통신의 첫마디가 ‘통신보안’이다. 예컨대 “통신보안, 작전과 홍길동입니다”라며 전화를 받는다. 보안 유출의 제1창구가 통신이기 때문이다. 인터넷 공간은 특성상 평양에 앉아서도 낱낱이 들여다볼 수 있다. 북한은 컴퓨터 영재 3000여 명을 ‘사이버 전사(戰士)’로 키울 정도로 정보전에 골몰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스마트폰으로 군 정보를 흘리는 짓은 북에 남침로를 열어주는 이적행위다. 국방부는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올해 1월 ‘군 장병 SNS 활용 가이드라인’을 하달했다. 그럼에도 사고가 반복되자 한층 강도가 세진 ‘사이버 군기강 확립대책’을 수립하기로 했다.

▷허 이병이 소속된 부대는 ‘통신보안’ 군기가 서 있는 듯했다. 그는 “사병이 휴대전화를 소지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라고 말했다. 휴대전화에 대한 허 이병의 생각은 조금 독특하다. “휴대전화의 진짜 문제는 게임 기능일 것 같아요. 보안 유출은 반복 교육을 통해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겠죠. 하지만 짧으면 2시간, 부대에 따라 6시간씩 보초를 서야 하는 상황에서 손에 게임기(휴대전화)가 있는데 전방만 주시할 수 있는 청춘이 몇이나 되겠어요? 초병이 휴대전화를 갖게 되면 북한 간첩이 철책 넘는 게 너무 쉬워질 거예요.”

허승호 논설위원 tigera@donga.com
#횡설수설#허승호#군 보안#스마트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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