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100m 달리기에 대해 이렇게 쓴 적이 있다. 하루키의 독특한 관점을 떠나서라도 육상 남자 100m는 대단한 종목이다. ‘지구에서 가장 빠른 인간’을 가리는 이벤트이기 때문이다. ‘올림픽의 백미(白眉)’, ‘육상의 꽃’이라는 수식어가 괜히 붙었으랴.
1896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첫 근대 올림픽이 열렸을 때 이 종목 우승자의 기록은 11초 8이었다. 요즘은 웬만한 중학교 선수도 가능한 기록이다. 40년 뒤 미국의 제시 오언스가 베를린 올림픽에서 10초 2의 세계기록을 세웠을 때만 해도 9초대를 뛰는 것은 인간의 영역이 아닌 것으로 여겨졌다. 불가능은 없었다. 32년 뒤 미국의 짐 하인스는 1968년 멕시코 올림픽에서 인류 최초로 10초의 벽을 무너뜨렸다(9초 95). 이후 기록이 단축될 때마다 육상 100m의 인간 한계는 스포츠과학의 뜨거운 논쟁거리였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이후 ‘누가 100m 세계기록을 갈아 치울까’라는 주제는 사라졌다. 궁금한 건 오직 우사인 볼트(자메이카)가 자신의 기록(9초 58)을 깰 수 있을지였다.
볼트는 런던에서 새로운 기록을 세우지는 못했다. 하지만 6일(한국 시간) 열린 결선에서 9초 63의 올림픽 기록으로 우승하며 1988년 서울 올림픽의 칼 루이스(미국) 이후 역대 두 번째로 이 종목 2연패를 달성했다.
올림픽도 끝난 마당에 볼트의 위대함을 다시 확인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대회 때마다 메인스타디움을 가득 메운 관중과 수십억 시청자가 지켜보는 최고의 이벤트, 그 대단한 육상 100m에서 한국 선수를 볼 수 없는 게 아쉬워서다.
결선에서 태극마크를 보는 건 언감생심이다. 이번 대회 이 종목 예선에는 42개국 56명이 출전했다. 아시아권만 해도 일본 중국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선수들이 트랙을 질주했다. 한국은 한 명도 없었다. 기준기록(10초 24·대회마다 다름)을 넘은 선수가 없기 때문이다. 놀랄 일은 아니다. 역대 올림픽에서 기준기록을 통과해 이 종목 예선에 출전한 선수는 1996년 애틀랜타 대회의 진선국이 유일하다.
‘스포츠 강국’이라는 한국이 도대체 왜 이런 걸까. 이유는 단순하다. 선수가 없기 때문이다. 육상 대표팀 오세진 총감독은 “일본은 대학 경기만 해도 80명이 출전한다. 한국은 대학 단거리 선수를 다 합쳐도 20명이 안 된다. 서울에 단거리 육상부가 있는 고교는 2개뿐이고 선수는 5명이 전부다. 대한육상경기연맹이 육상 꿈나무를 발굴하고 있지만 뽑아 놓으면 1년도 안 돼 대부분 야구나 축구 등 다른 종목으로 바꾼다”며 아쉬워했다. 없는 선수를 만들어 내는 건 육상연맹이 노력해서 될 일이 아니다.
한때 ‘황인종은 육상 단거리에서 금메달을 딸 수 없다’는 편견이 있었다. 류샹(중국)이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남자 110m 허들에서 우승한 뒤론 사라졌다. 우리만 해도 넘볼 수 없을 것 같았던 수영과 스피드스케이팅에서 올림픽 금메달을 따지 않았던가.
한국은 런던 올림픽에서 종합 5위라는 원정 대회 최고 성적을 거뒀다. 4년 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는 또 어떤 놀라움과 감동을 줄지 궁금하다. 거기에 육상 100m 출전이 포함된다면 정말 대단하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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