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법원, 法經 유착도 정치사회 분위기 편승도 말라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8월 17일 03시 00분


서울서부지법 형사12부는 그룹 계열사의 돈으로 위장 계열사를 지원해 회사에 수천억 원의 손해를 입힌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에게 징역 4년과 벌금 51억 원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법원은 불구속 기소된 피고인에 대해서는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하더라도 법정 구속은 사실심이 끝나는 2심 판결까지 미루는 경우가 많다. 김 회장에게 집행유예 없는 실형 4년을 선고하고 1심에서 법정 구속한 것은 재벌총수에 대한 과거의 판결에 비해 상대적으로 엄중해 보인다.

그동안 재벌총수가 기소된 사건은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이라는 선고가 공식처럼 되다시피 했다. 집행유예를 위해서는 선고형이 징역 3년 이하여야 한다. 실제로 2003년 최태원 SK그룹 회장, 2006년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2008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등이 모두 1심이나 2심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이번 판결을 내린 서경환 부장판사는 “2009년 도입한 양형기준에 따라 기업총수의 경영 공백 우려나 경제발전 기여 공로 등은 집행유예를 위한 참작 사유가 될 수 없다”고 밝혔다. 법원은 올해 2월 횡령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에 대한 1심에서 이 양형 기준을 처음 적용해 집행유예 없는 징역 4년 6개월을 선고했다.

과거 대기업 총수에 대한 사법적 잣대는 엄정하기는커녕 구부러지기 일쑤였다. 법원은 검찰이 구속 기소를 해도 보석으로 석방하거나, 1심과 2심에서 연거푸 형을 깎아줘 징역형을 선고하고도 집행유예로 풀어줬다. 재벌총수들은 칭병(稱病)을 하며 환자복 차림에 휠체어를 타고 법정에 나와 형량 감경(減輕)을 위한 분위기를 잡았다. 이 과정에서 법원과 전관예우로 연결된 로펌과 변호사들이 사건을 맡아 막대한 수임료를 챙겼다. 법경(法經) 유착에 따른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였다.

정치권에선 경제범죄의 법정 최소형을 높여 법관이 재량으로 형을 줄여주더라도 아예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 없게 만드는 방법으로 재벌총수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그러나 경제범죄를 재벌총수만 저지르는 것도 아니고 피고인에 따라서는 불가피하게 집행유예를 선고해야 할 경우도 없지 않을 텐데 이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법원의 봐주기 판결만큼이나 정치적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해 내리는 판결도 바람직하지 않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도 김 회장과 비슷한 혐의로 기소돼 있다. 대기업들이 너무 위축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당당하게 준법 경영에 나서 기업의 체질을 선진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법원#정경유착#재벌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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