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형준]성공하는 첫 대통령이 되는 길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8월 17일 03시 00분


김형준 객원논설위원·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
김형준 객원논설위원·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
대선이 4개월 남짓 남았다. 새누리당은 20일 전당대회를 통해 대선 후보를 선출하고, 민주통합당은 다음 주부터 제주를 시작으로 23일간의 순회 경선에 돌입한다. 정치권의 관심은 온통 현실적이고 정치 공학적인 것에 쏠려 있다. 과연 박근혜가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 안철수는 정말 대선에 출마하는가. 누가 민주통합당의 후보가 될까. 최종 야권 단일 후보로 누가 될까.

임기 말 ‘데드 덕’된 전임 대통령들

우리 사회가 대선 직후 어떤 미래를 만나야 하느냐를 놓고 진지하게 고민한다면 이런 질문들을 뛰어넘는 사고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다소 생뚱맞지만 너무나도 중요한 의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과연 “어느 후보가 성공하는 대통령의 꿈을 꾸고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분명한 공과(功過)가 있지만 1987년 민주화 이후 선출된 다섯 명의 대통령은 모두 실패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들 모두 임기 말에 이르러선 단순한 ‘레임 덕’(절뚝거리는 오리)이 아니라 아무도 대통령으로 인정해주지 않는 ‘데드 덕’(죽은 오리)의 신세를 면치 못하는 초라한 존재로 전락했다.

한국에서 실패한 대통령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로 5년 단임제의 구조적인 문제와 대통령의 취약한 자질과 잘못된 리더십이 종종 언급된다. 필자는 대선 과정이 잘못됐기 때문에 집권 후에 실패를 잉태할 수밖에 없다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자 한다. 자연계에서는 물체에 아무런 힘이 작용하지 않을 때, 물체가 원래의 속력과 방향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관성의 법칙’이 존재한다. 움직이던 버스가 갑자기 정지하면 승객이 앞쪽으로 쏠린다든지, 정지해 있던 버스가 갑자기 출발하면 승객이 뒤쪽으로 쏠리는 것이 이에 해당된다.

정치에도 분명 관성의 법칙이 존재한다. 선거 과정에서 후보가 아무리 힘들더라도 정도를 지키면서 올바른 역사의식과 강한 도덕성을 바탕으로 국민으로부터 지지를 받으면 좋은 정치 관성이 유지돼 성공하는 대통령의 길이 열릴 수 있다. 반대로 부정적인 역사의식과 함께 표만을 의식해 선거를 극단으로 몰고 가면 나쁜 관성에 의해 집권 후 갈등과 대립의 정치 중심에 서게 돼 실패한 대통령이 되기 쉽다.

한국 대선은 이질적인 세력이 승리 지상주의에 빠져 삐뚤어진 연대를 통해 정권을 창출하거나 후보의 도덕성과 공공성이 종종 무시된 역사로 점철됐다. 1992년 대선에서는 군부 쿠데타 세력과 민주화 세력이 3당 합당을 해 영남과 충청 지역을 기반으로 승리했다. 이런 태생적인 한계로 인해 문민정부는 시간이 흐를수록 집권 세력 간에 내부 분열이 극대화되면서 자멸했다. 1997년 대선은 유신 투쟁 세력과 유신 원조 세력이 내각제 개헌을 매개로 DJP 연대를 만들어 승리했다. 하지만 개혁 추진 세력과 개혁 대상 세력 간의 ‘잘못된 만남’은 정권교체의 취지를 퇴색시켰고 국민의 정부 초기 국정운영 실패의 원인이 됐다.

어떻게 집권했느냐가 더 중요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는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와 “반미면 어떠냐”는 구호로 상징되는 세대와 이념 간 편가르기를 통해 승리를 일궈냈다. 이런 분열과 대립의 선거 전략은 집권 후 부메랑이 되어 참여정부 집권 내내 국민 통합의 걸림돌이 됐다. 2007년 대선에서는 이명박 후보가 BBK 의혹으로 도덕적인 치명상을 입었지만 경제 살리기 능력이 있을 것이라는 국민의 기대 덕분에 승리했다. 압도적인 차이로 승리했어도 도덕성이 취약한 정권의 말로가 얼마나 비참한지 MB 정부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보다 어떻게 집권하느냐가 더 중요한 시대가 됐다.

현재 진행 중인 대선 과정을 보면 실패한 대통령의 악순환을 끊기 어려울 것 같은 불안이 엄습한다. 후보들의 비전과 정책은 실종된 채 ‘박근혜 때리기’와 ‘야당 색깔 씌우기’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대선이 이렇게 저급한 수준의 과정으로 치달으면 누가 정권을 잡아도 성공한 대통령이 나오기 어렵다. 선거 결과에 대한 승복은 없고 집권 초기부터 죽기살기식의 정권 퇴진 운동이 판을 칠 것이다.

이런 참담한 정치 현실을 인식한다면 대선 후보들은 목표를 바꾸어야 한다. 집권에만 목을 맬 것이 아니라 대선 과정에서 성공하는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정치 학습을 강도 높게 해야 한다. 무엇보다 국민과의 약속을 깨고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세력과의 무분별한 연합에 대해 과감히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보여줘야 한다. 대선 조직 구성에서도 계파 이념 지역을 뛰어넘어 지금까지 어느 후보도 시도해 보지 못했던 담대하고 포용적인 인사를 단행해야 한다. 조직 운영에서도 대화와 타협, 소통과 합의라는 민주주의 대원칙이 살아 숨쉬도록 해야 한다. 이런 좋은 정치 학습만이 좋은 정치 관성으로 작동돼 최초의 성공한 대통령이 탄생하는 길이 열릴 것이다.

김형준 객원논설위원·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 joon57@mju.ac.kr
#대통령#대선#정치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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