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길목이나 가을의 문턱에 접어들면 이런저런 교향악 축제가 열린다. 이제 시도별로 교향악단도 늘어나 음악을 사랑하는 이라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아름다운 선율에 빠져들 수 있다. 음악을 몰라도 사는 데 문제는 없겠지만 음악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인생의 행복 하나를 건너뛰는 격이다. 특히 교향악은 우리에게 내면의 소리를 듣게 해준다. 해방 후 어수선한 시국에서도 교향악이 연주되었다.
고려교향악단의 정기연주회 광고(동아일보 1948년 2월 20일)에서는 “해방 이래(爾來·이후) 꾸준히 교향악 운동에 매진하는 조선 유일의 고려교향악단”이라는 헤드라인 아래 연주회 곡목을 명시했다. ‘모-찰트(모차르트) 저녁’이라는 연주회의 주제에 알맞게 쮸피터(주피터) 교향곡, 봐이올린(바이올린) 협주곡, 마적(魔笛·마술 피리) 서곡, 피가로의 결혼 서곡을 연주한다는 내용이다. 바이올리니스트 안병소 선생(1908∼1979)이 지휘를 맡았다. 광고에서는 그를 “오랜 침묵을 깨트리고 감연(敢然·과감)히 나선 우리 악단의 지보(至寶·지극히 귀한 보물)”라고 소개했다.
고려교향악단(高麗交響樂團)은 1945년 9월 15일 현제명의 주도로 창단했다가 1948년 들어 제26회 정기공연을 마지막으로 해체되었다. 그러니까 이 광고에서 알린 연주회는 악단을 해체하기 직전에 이루어진 셈이다. 그 후 서울교향악단으로 이어졌고 6·25전쟁 중에는 해군정훈음악대가 되었다가 나중에 서울시립교향악단이 되었다.
심포니 오케스트라 공연에 갈 때마다 악기마다 쓰임새가 따로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관객 입장에서 보면 바이올린이나 첼로 같은 현악기 연주자는 거의 쉴 틈 없이 연주하니까 가장 많은 출연료를 받아야 할 것 같다. 피콜로나 플루트 같은 목관악기 연주자와 호른이나 트럼펫 같은 금관악기 연주자가 그 다음. 팀파니나 심벌즈 같은 타악기 연주자는 가장 적게 받아야 할 듯하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안 된다. 결정적 순간에 쨍 하고 울리는 타악기가 제몫을 못하면 공연에 실패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운명도 악기와 같지 않을까? 바빠야 제몫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평상시에는 노는 것 같지만 한순간의 결정적 역할로 제몫을 톡톡히 해내는 사람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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