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의원이 어제 새누리당 경선에서 84%의 지지로 대통령 후보에 선출됐다. 5년 전 이명박(MB) 후보는 박 후보를 불과 1.5%포인트 차로 이겼다. 역대 다른 경선에 비춰 보더라도 유례가 없을 정도의 압도적 승리다. 여성이 주요 정당의 대선 후보가 된 것도 헌정 사상 처음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 대를 이어 대권 도전에 나서면서 보수우파와 진보좌파의 대결, 여성과 남성의 성(性) 대결과 함께 한국의 산업화 민주화를 둘러싼 공방도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2007년 MB가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 대선 후보로 선출됐을 때 우리는 ‘이명박 후보 본선의 험로’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대통령 후보 빼고는 모든 것을 버린다는 각오로 임해야 한다”고 촉구한 바 있다. MB가 대선에서 530만 표 차로 이겼던 당시와 비교하면 지금 박 후보 앞에는 훨씬 힘든 험로(險路)가 가로놓여 있다. 경제사회적 상황도, 정치구도도 그때보다 좋지 못하다. 대선 승리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박 후보야말로 이제부터 대선 후보 빼고는 모든 것을 버린다는 각오를 가져야 한다.
박 후보는 자신이 가진 것 가운데 부정적인 것은 모두 털어낼 필요가 있다. ‘박근혜가 바꾸네’를 넘어 ‘박근혜가 바뀌네’라고 많은 사람이 실감할 수 있어야 한다. 그에게서 떠오르는 가장 부정적인 이미지는 불통(不通)이다. 국민의 아픔에 공감한다는 인상을 주지 못하는 정치지도자는 다른 장점이 아무리 많더라도 국가 최고 지도자에 오르기 어렵다. 아직 공식 출마 선언도 하지 않은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국민의 높은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은 소통 이미지의 덕이 크다.
‘박근혜 대세론’은 이미 깨진 지 오래다. 대세론의 허망함은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가 연거푸 고배를 마신 1997년과 2002년 대선 때 입증된 바 있다. 지지율이 견고하니 유리하다는 달콤한 소리에 솔깃할 게 아니라 신발끈을 다시 고쳐 매야 한다. 변화의 출발점은 인사(人事)다. 박 후보는 친박(親朴)으로 일컬어지는 측근들을 뒤로 물리고 경선 과정에서 소원해졌거나 경선에 불참했던 비박(非朴) 인사들을 대거 포용하는 탕평 인사로 대선 진용을 짜야 한다.
대한민국의 유권자 성향은 보수우파 30%, 진보좌파 30%, 중도 40%로 나뉘어 있다. 대선 승리를 기대하려면 보수우파의 대연합은 기본이고, 중도세력까지 끌어안을 수 있어야 한다. 박 후보는 대선 후보 수락 연설에서 “이념과 계층, 지역과 세대,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 모두가 함께 가는 국민 대통합의 길을 열어가겠다”고 밝혔다. 박 후보는 이를 행동으로 보여 줘야 민심을 잡을 수 있다.
대선 후보 박근혜는 ‘박정희의 딸’을 넘어서야 한다. 국민은 세계 경제 10위권 대한민국과 5000만 국민의 생존을 책임질 대통령감을 찾고 있다. 박 후보가 ‘독재자의 딸’이라는 프레임을 깨고 나오지 못한다면 국민통합의 시대정신을 구현할 수 없다. 박 후보에게 거리를 두고 있는 2040세대에게 다가서기 위해서도 박정희의 부정적 유산은 과감히 비판하고 극복할 필요가 있다.
2007년 대선에서 MB가 압승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경제만은 살리겠다는 약속에 국민이 희망을 걸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MB는 집권 기간 부적절한 인사와 친인척 및 측근 비리로 국민에게 큰 실망을 줬다. 박 후보는 MB를 반면교사로 삼아 국민에게 모든 면에서 오늘보다는 내일이 나아질 수 있겠다는 희망을 주는 정책과 대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대선까지는 120일가량 남았다. 박 후보가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국가를 경영할 능력과 자질을 갖췄는가. 글로벌 시대에 세계와 소통하면서 경쟁과 협력으로 국익을 극대화하고 국위를 선양할 리더십을 지녔는가. 이 모든 것을 국민에게 보여 주기에 길지 않은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