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1981년 70세에 미국 40대 대통령이 됐다. 그리고 1984년 73세에 재선에 도전해 월터 먼데일 후보(당시 56세)와 TV토론에서 만났다.
먼데일=당신의 나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레이건=나는 이번 선거에서 나이를 문제 삼을 생각은 없습니다.
먼데일=그게 무슨 뜻입니까?
레이건=당신이 너무 젊고 경험이 없다는 사실을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시청자=폭소!
먼데일은 함께 웃을 수밖에 없었다. 레이건의 고령을 걸고넘어지려다 자신의 경험 부족을 부각시킨 꼴이었다. 레이건이 정색을 하고 ‘왜 나이를 따지느냐. 나는 건강하다’는 투로 응수했다면 먼데일은 더 파고들 여지를 포착했을지 모른다.
다른 장면에서 레이건은 “배우가 어떻게 대통령이 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통령이 어떻게 배우가 되지 않을 수 있느냐”고 되물었다. 만약 그가 ‘나는 배우만 한 것이 아니다. 일찍이 1962년에 공화당에 입당했고, 미국 3대주(州)에 드는 캘리포니아 주지사도 지냈다. 그래도 자격이 없단 말이냐’는 식으로 맞받았다면, 사실이긴 하지만 레이건의 매력은 돋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허파에 총 맞고도 잊지 않은 유머
대통령 레이건이 기자들의 고약한 질문에 시달리다 “개××(son of bitch, S.O.B.)!”라는 말을 입에 담았다. 며칠 뒤 기자들이 ‘S.O.B.’라는 글자를 새긴 티셔츠를 레이건에게 선물했다. ‘개××’ 발언의 복수를 당한 레이건은 “기자 여러분은 모두 애국자입니다. 예산 절약(Saving Of Budget·SOB)하란 뜻이지요. 충고 잘 새기겠습니다”라고 말했다. 해피엔딩이었다. 모욕을 참지 못하겠다며 권력과 권위로 기자들을 누르려 했다면 대통령과 언론의 불화만 커졌을 가능성이 있다.
어느 날 레이건은 연설을 이렇게 시작했다. “나에게는 대통령이 될 만한 아홉 가지 재능이 있습니다. 첫째, 한 번 들은 것은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 탁월한 기억력! 둘째, 에 또 … 그게 뭐더라? …” 청중은 박장대소하며 그의 연설을 받아들일 마음의 문을 열었다. 독선이 느껴지는 주장보다 이런 허(虛)와 유머가 정치 지도자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높일 수 있다.
1981년 3월 정신병자 존 힝클리가 노동계 지도자들과 오찬을 하던 레이건을 향해 총을 쐈다. 총알이 심장에서 12cm 떨어진 대통령의 허파를 관통했다. “여보, 난 고개 숙이는 것을 잊었을 뿐이야!” 의식이 깨어난 후 레이건이 부인 낸시에게 한 첫마디였다. 수술실로 들어가면서는 의료진을 향해 “당신들 모두가 훌륭한 공화당원이라는 것을 나에게 확신시켜 주시오”라는 말로 수술 성공을 부탁했다. 비상상황에 국민을 안심시키는 여유, 이것도 중요한 리더십이다.
‘다수의 행복은커녕 소수의 특권만 증식시킨’ 공산주의를 미국 역대 대통령 중에서 가장 강하게 비판한 인물이 레이건이다. 하지만 그는 목청만 높인 것이 아니라 유머로 공산주의의 허구를 세계에 각인시켰다. “소련의 헌법은 발언의 자유와 집회의 자유를 보장한다. 그러나 미국의 헌법은 발언 후의 자유와 집회 후의 자유를 보장한다.” “공산주의자는 마르크스와 레닌을 읽은 사람이고, 반공주의자는 마르크스와 레닌을 잘 아는 사람이다.” 레이건은 소련 붕괴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미국 지도자로 역사에 남았다.
레이건은 ‘위대한 소통자(great com-municator)’로 불리며 사후에도 미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작년 갤럽 여론조사에서 ‘미국인이 생각하는 가장 위대한 대통령’ 2위가 에이브러햄 링컨(14%)이었고 1위가 레이건(19%)이었다.
레이건의 말처럼 대통령은 국민이 바라는 일을 위해서는 배우의 역할도 잘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이전에,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은 자신이 어떤 인물이든 자신을 능숙하게 연기할 줄 알아야 한다. 물론 ‘연기’도 자신의 생각과 같지 않은 국민의 생각, 그리고 언론을 통해 전해지는 따가운 소리까지 겸허하게 받아들일 때 ‘가식이 아닌 진정성’으로 국민 가슴을 파고들 것이다.
대선주자들 표정 언행 메마르다
우리 대선 주자들은, 이미 무대에 오른 사람이나 아직 객석에 숨어 있는 사람이나, 스스로는 소통을 잘하고 있다고 내비친다. 하지만 다들 각자가 친 보호막 속에서 자기에게 편리한 방식의 소통만 할 뿐이다. 대선의 원초적 본질은 권력전쟁이겠지만 그래도 지도자감은 국민에게 따뜻함과 여유와 웃음을 나눠줄 수 있어야 할 텐데, 표정과 언행들이 너무 메마른 감이 있다. 탁 트인 득음(得音)이랄까 득도의 경지를 보여주는 ‘위대한 소통자’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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