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인 2003년 2월 박근혜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 의원에게 첫 내각의 통일부 장관을 맡아줄 것을 은밀히 제안했다. 노 전 대통령은 정파를 초월한 거국내각을 구성하기 위해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의 상징성이 필요했던 듯하다. 박 의원은 2002년 김대중(DJ) 정부 시절 북한 김정일을 만난 적도 있다. 그러나 박 의원은 장관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나중에 “비공식 제의여서 개의치 않았다”고 밝혔다. 노무현과 박근혜는 이후 계속 엇나가기 시작했다.
▷노무현은 2005년 7월 한나라당 대표가 된 박근혜에게 대연정(大聯政)을 제안했다. 내각 전권을 넘길 테니까 사실상 여야 공동정부로 운영해보자는 취지였다. 돌발적인 대연정 제안에 여권은 극심한 내홍에 휩싸였다. 노무현과 박근혜는 그해 9월 청와대에서 만나 대연정 문제를 논의했으나 회담은 성과 없이 끝났다. 150분간 웃음 한 번 없을 정도로 두 사람의 신경전이 치열했다. 임기 말 노무현이 4년 연임제 ‘원 포인트’ 개헌을 제안하자 박근혜는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 비판했다. 노무현은 “나쁜 대통령은 따로 있다”고 되받아쳤다.
▷2004년 8월12일 박근혜는 DJ를 찾아가 “아버지 시절에 여러 가지로 피해를 입고 고생하신 데 대해 딸로서 사과한다”고 말했다. DJ는 자서전에서 “그 말이 참으로 고마웠다. ‘세상에 이런 일도 있구나’ 했다. 박정희가 환생해 내게 화해의 악수를 청하는 것 같아 기뻤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노무현과 박근혜의 ‘화해’는 이뤄지지 않았다. 2009년 5월 노무현의 서거 때 박근혜는 김해 봉하마을을 찾았으나 노무현 지지자들이 막아서는 바람에 발길을 돌렸다.
▷박근혜는 새누리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다음 날인 어제 봉하마을의 노무현 묘역을 참배하고 부인 권양숙 여사를 예방했다. 참배는 묘역을 관리하는 노무현 재단에 사전 연락 없이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민주통합당은 “진정성이 없는 정치 쇼”라고 폄하했으나 박근혜 측은 “국민대통합의 첫 발걸음”이라고 말한다. 살아 있을 때 둘 사이의 앙금과 관계없이 여당의 대통령 후보가 전직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하는 것을 색안경을 끼고 바라볼 이유는 없다.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도 박정희 묘역을 찾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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