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인터넷 실명제(實名制)’에 대해 재판관 8명의 전원 일치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인터넷 실명제 시행 이후 불법정보 게시가 눈에 띄게 감소했다는 증거를 찾아볼 수 없는 반면, 국내 인터넷 이용자들이 실명제 적용을 받지 않는 해외 사이트로 도피해 국내 사업자들이 역차별 받는 등의 부작용이 많다는 것이 위헌 결정 이유다.
2007년 7월 노무현 정부가 도입한 인터넷 실명제는 인터넷에 글이나 동영상을 올리기 전 본인 여부를 확인하지만 가명으로도 글을 쓸 수 있어 다른 이용자들은 실명을 볼 수 없는 낮은 단계의 실명제다. 익명의 언어폭력이 판치는 사이버 공간에서 최소한의 피해자 보호 장치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도입됐다.
실명제는 대체로 여론의 환영을 받았지만 이후 실명제 적용을 받지 않는 모바일 게시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새로운 통신수단이 대거 등장해 도입 효과가 반감됐다. 네이버 다음 등 국내 포털 사이트에 글을 올리던 누리꾼들이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해외 기반의 트위터 등 SNS로 몰려갔다. 주민등록번호가 없어 본인 인증을 할 수 없는 외국인들은 국내 사이트에 게시물을 올리기가 불가능했다. 본인 인증을 위해 사이트에 제공한 개인 정보가 대량으로 유출돼 이용자들이 피해를 보는 사건도 잇따랐다.
헌법재판소는 인터넷을 실명제 도입 이전 익명의 세계로 돌려보냈다. 실명제 도입은 악성 댓글에 시달리던 유명 연예인 최진실 씨의 자살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헌재 결정이 인터넷을 이용해 인격 살인에 해당할 정도의 댓글을 달고 허위사실을 퍼뜨리는 행위를 부추기지는 않을까 걱정스럽다. 다만 누리꾼들이 명심해야 할 것은 실명제가 없어진다고 해서 인터넷상의 익명 불법 게시물이 책임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명예훼손이나 모욕, 흑색선전은 사이버상이든 아니든 형사처벌의 대상이다. 검찰과 경찰의 사이버 수사능력이 5년 전에 비하면 크게 개선돼 익명의 글이라도 대부분 인터넷주소(IP)로 추적할 수 있다.
개인은 어느 정도 보호를 받을 수 있겠지만 국가나 공인을 향한 근거 없는 비판은 미네르바 사건 무죄 판결에서 보듯 처벌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올해 말 대선을 앞두고 인터넷과 SNS에서 대선 후보에 대한 흑색선전이 기승을 부릴 것이다. 인터넷과 SNS의 익명성을 보장하면서 어떻게 공론(公論) 형성 과정의 왜곡을 막을 수 있을지가 우리 사회에 주어진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