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졸업하고 1년 반째 방황을 이어 가고 있다. 나는 진작부터 PD를 꿈꿨다. 하지만 좁은 언론고시의 문이 내게 열릴까 싶어 일반 기업 채용시장도 기웃거린 지 벌써 2년째다. 요즘 들어선 더 혼란스럽다.
‘난 진짜 PD가 되고 싶은 걸까?’ ‘다른 친구들처럼 일반 회사에 들어가면 좋잖아.’ ‘아니야, 그러면 난 분명히 후회할거야.’ ‘막상 다녀 보면 적응할 수도 있어.’ ‘아, 그래도 내 꿈은 PD인데….’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이상과 현실을 저울질하는 나. 용기와 결단력이 부족한 탓이지만, 직장 생활 2∼3년 차에도 고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친구들을 보면 더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대학 시절, 스포츠 전문 기자가 되겠다며 군대를 제대하자마자 모은 돈을 탈탈 털어 유럽 축구여행까지 다녀온 친구가 있었다. 의지가 얼마나 대단했느냐 하면, 프랑스까지 가서 그 유명한 에펠탑과 개선문은 보지도 않고 내내 축구 경기만 봤다고 했다. 복학 뒤에도 유명 축구단의 서포터스로 활동하고, 블로그에 스포츠 관련 칼럼을 연재하며 차근차근 스포츠 기자로서의 꿈을 밟아 갔다. 그러던 친구는 아버지의 퇴직과 여자친구와의 결혼 문제로 꿈을 접었다. 주변 사람들과 연락마저 끊고 토론 면접, 협상 면접, 프레젠테이션 스킬을 속성으로 익히더니 지난해 가을, 모 화장품 회사에 입사했다.
“하루 종일 앉아서 전국 매장들 영업수치 모아 엑셀만 돌려. 이게 현실이야. 대학 때 배운 전공? 영업지원 부서에서 뭐가 쓸모가 있겠어. 이럴 거였으면 엑셀이나 실컷 배워 둘걸.”
친구는 좋아하는 스포츠를 제때 즐기지도 못하는 일개미가 되어 하루 14시간 이상의 업무를 감내하고 있다. 그 친구는 “막내라면 누구나 겪어야 할 과정”이라며 마음의 위안을 찾고자 하지만, 아직도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듯했다. 얼마 전 만남에서 스포츠 협회의 채용공고 조건을 이야기하며 말했다. “딱 서른까지만 해볼까?”
남자 나이 서른.
저마다의 꿈은 있었겠지만, 시간에 쫓겨 주위 등쌀에 밀려 자의 반 타의 반 들어간 회사에서 2, 3년 차를 맞이하는 나이다. 겨우 안정을 찾을 만한 시기지만 미련은 버리지 못한다. 이상을 좇을 마지막 기회이기 때문이다.
국내 유명 대기업에 8개월 정도 재직했던 한 선배는 서른 살이 되던 해 직장을 과감히 그만뒀다. 본인의 꿈을 찾아 파티를 열어 주는 이벤트 사업을 시작했다. 그의 도전이 성공적이지는 못하다. 청년창업 강좌란 강좌는 다 듣고도 2년간 상호를 네 차례나 바꿨다.
“형 나이가 올해 서른둘이야. 지금도 오락가락하는 매출 때문에 확신이 서지 않아. 좀 더 안정적인 사업을 찾아야 할 텐데…. 회사를 괜히 나왔다는 생각도 들고.”
선배들에게 상담을 청하면 “꿈을 향해 살라”고 말한다. 신문 방송에서도 ‘회사를 관두고 창업에 도전한 젊은 CEO’나 ‘고액 연봉을 포기하고 꿈을 찾은 회사원’의 성공 사례를 띄운다. 하지만 그런 성공이 극히 드물다는 걸 안다. 꿈을 향한 도전이 현실이라는 장벽에 부닥칠 때, 동료들보다 뒤처졌다는 사실에 절망하게 될까 두렵다.
이제 9월, 기업들의 대규모 공채 시즌이 다가온다. 여전히 길을 찾지 못한 못난 나에게도 대학 후배들이 고민을 털어놓는다. 그들에게 조언이랍시고 얼마 전 이런 이야기를 해 주었다.
“여기저기 묻지 마 식으로 지원하면 후회한다. 나이 서른 돼서 퇴직하고 백수 된 애들 진짜 많아. 첫 직장이 중요하니까 역량과 적성을 고려해서 신중하게 입사해.”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조차도 현실을 직시하자니 한 번뿐인 삶이 너무 아깝고, 이상을 추구하자니 낙오자가 될까 봐 머뭇거려진다. 다시 돌아온 취업 시즌, 9월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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