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와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오늘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리더십의 핵심으로 ‘불안의 시대’ 극복을 들었다. 박 후보는 불안의 시대를 안정된 지도자를 통해, 안 원장은 복지국가 건설로 극복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느 시대도 불안하지 않고 위기가 아닌 때가 없었던 듯하지만 이 시대 불안은 질이 다르다.
무감각 상태로 느끼는 ‘고민 없음’
젊은 세대 불안이 워낙 넓고 깊게 퍼지자 사회 전체가 그들의 불안감 해소에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듯한 느낌이다. 청춘이란 원래 다 그런 것이니 기죽지 말라는 절절한 위로의 메시지와 함께 “도전은 언제나 불안하다. 도전 없이는 발전도 없다”는 식의 격려를 담은 책이 많다. 독설 코드도 등장하고 있다. 인기몰이를 하는 스타 영어 강사는 “슬럼프는 무슨, 유난 떨지 마라” “위로를 구걸하고 다니지 마라” 같은 독설로 나름 무기력에 빠진 젊은이들을 일으키려 애쓰고 있다.
광운대 김예란 교수는 ‘디지털 지구 그리고 한국어라는 말우주’(문학동네 2011 봄호)란 글에서 인디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을 통해 21세기 청년의 모습을 실감나게 설명한다. 예컨대 ‘별일 없이 산다’는 노래는 실제 사건이 벌어지지 않아서 느끼는 무사안일이 아니다. 많은 사건들을 별일 아닌 것으로 때우고 말거나, 혹은 아예 느끼지 않기로 결단을 내린 후 만들어진 순수한 무감각으로서의 ‘별일 없음’이다. 가사에 묘사된 ‘나’는 마치 도마뱀이 통각기능을 스스로 마비시킨 후 꼬리를 자르고 도망치는 식으로 외부세계 자극을 차단하고 튕겨낸 몸이 느끼는 ‘걱정, 고민 없음’이고, ‘즐거움’과 ‘신남’이다.
‘강남 스타일’은 장기하와 스타일이 다르지만 유사점이 있다. 섹시하고 유머러스한 키치(저속한) 이미지들을 강한 비트의 음악과 함께 즐긴다. 고상해지려, 잘나 보이려 애쓸 것도, 고민할 것도 없다.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니고 실용적인 쓰임새도 없지만, 폭염에 땀 뻘뻘 흘리며 유사한 패러디 동영상을 열심히 만들어 올리는 데 몰입돼 신나게 즐긴다. 세계적인 불안의 시대에 전 세계 젊은이들도 공감한 것은 아닐까.
위험사회 이론가들이 주장하듯 현대사회는 구조적으로 위험사회라서 늘 불안이 잠재하고 있으며, 급속하게 진행되는 변화를 혼란스럽게 겪는 과정에서 불안이 생기기도 한다. 신자유주의 시대가 무한도전과 무한질주를 종용하며 경쟁적 개인주의를 선택의 여지없는 가치로 부추기는 데서 오는 숨 가쁨, 경제적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경제적 자원의 배분논리와 연동돼 있는 사회적 인정체제가 비민주적으로 구축돼 있다고 느끼는 데서 오는 좌절감이 만드는 분위기일 수도 있다. 대통령 후보들의 공약이 이 모든 주장을 수용하고 처방을 하겠다는 것은 아닐지라도 민생, 복지, 내외적인 위협으로부터의 안전판 마련 등 부분적으로 개선을 약속하는 것이리라.
불안시대 극복을 위한 지도력
오늘의 젊은 세대는 1970, 80년대의 사회비판 세력과는 다르다. 우리 사회의 가치 기준에 저항하며 비판하고 대안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모색하기보다 열심히 스펙을 쌓고 현재세계의 가치를 충실히 따라 하고자 노력하는 세대다. 칙칙하고 무거운 가치보다 가벼운 즐김을 더욱 추구한다. 어찌 보면 착하고 낙천적이며 쾌활한 세대지만 불안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불안을 느끼지 않으려고 사소한 즐거움에 탐닉하며 고민을 받아쳐 버린다. 젊은 세대에게 잔뜩 가르쳐 놓고 막상 그것을 실현할 수 없도록 사방을 막아놓은 현 시스템(좌우를 막론하고)의 책임자들은 진정 책임을 절감해야 한다. 그것이 국내 시스템이든, 국제적인 신자유주의 체제이든 간에 말이다.
실존주의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불안은 일상적인 세계에서 진정한 가능성이라고 생각했던 가치들이 붕괴되면서 우리들이 의지했던 인물들, 제도들마저 모두 무의미하게 느끼는 허무하고 무상한 상태다. 니체의 말을 빌리면 ‘불안은 기존의 가치들이 붕괴됐지만 우리가 추구해야 할 새로운 가치는 나타나지 않은 갑갑한 상태’다. 그러나 절망의 상태가 아니라 창조적 열망의 활기도 잠재하고 있는 상태다. 불안은 절망으로 떨어질 수도, 창조적인 새로운 가치와 정체성을 획득할 가능성도 지닌다.
불안의 시대를 절망으로 이끌지, 새로운 빛으로 인도할지는 새로운 지도자들 몫이다. 경제적 민주주의, 사회 통합, 복지국가 건설이 불안을 딛고 일어서게 할 빛이 될까. 문제는 누가 국민의 열정적인 참여와 협조를 이끌어 낼 가치를 제시하느냐다. 에릭슨은 외적인 예측성(엄마는 나갔지만 늘 돌아온다)과 내적 확실성(절대 나를 버리지 않는다)이 확립됐을 때 아이는 비로소 불안에서 벗어나고 사회적 성취가 가능하다고 했다. 새 지도자는 무슨 대단한 가치 제시에 이르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예측 가능성과 확실한 신뢰를 구축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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