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위원회 좌담]공천 뒷돈과 정치쇄신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8월 25일 03시 00분


“대선주자들이 공천비리 근절 대책 내놓게 만들어야”

동아일보사 독자위원회는 20일 본사 편집국 회의실에서 회의를 열고 ‘공천 뒷돈과 정치쇄신’을 주제로 토론했다. 왼쪽부터 김사중 스탠더드에디터, 박태서 미디어연구소장, 이
주향 위원, 이진강 위원장, 김동률 위원, 한기흥 이인철 스탠더드에디터.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동아일보사 독자위원회는 20일 본사 편집국 회의실에서 회의를 열고 ‘공천 뒷돈과 정치쇄신’을 주제로 토론했다. 왼쪽부터 김사중 스탠더드에디터, 박태서 미디어연구소장, 이 주향 위원, 이진강 위원장, 김동률 위원, 한기흥 이인철 스탠더드에디터.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 부패 사슬이 끊어지지 않는 정치 풍토가 다시 도마에 올랐다. 4·11총선 당시 새누리당 공직후보자추천위원이 공천 뒷돈을 받은 혐의가 있다며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관련 사건을 검찰에 넘겼다. 검찰 수사는 진행 중이다. 돈을 건넨 혐의를 받는 사람은 새누리당 비례대표 의원으로 당선됐다. 동아일보 독자위원회는 20일 ‘공천 뒷돈과 정치쇄신’을 주제로 토론을 벌였다. 》
―통합진보당의 부정 경선, 곽노현 교육감의 후보 매수 사건 등이 벌어질 때마다 언론이 많은 지적을 쏟아냈지만 또 새누리당의 공천 뒷돈 사건이 불거졌습니다. 현재 수사가 진행 중에 있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코앞에 닥친 대선부터 다음 총선 등 각종 선거에서 나타날 후진적인 정치 문화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언론이 정치 부패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기능을 발휘할 수는 없는지 함께 논의해 보겠습니다.


이진강 위원장=공천 뒷돈 사건이 옳고 그르냐를 따질 단계는 아니라 생각합니다. 동아일보는 사실을 그대로 다뤄 원인을 명백하게 알려주고 대책을 논의하도록 사회 분위기를 이끌어야 합니다. 정치 부패 문제는 수차례 원인과 대책을 논의했을 테지만 왜 이런 일이 자주 벌어질까요?

한기흥 스탠더드에디터=4월 총선에서 여야 모두 깨끗하게 공천하겠다고 다짐했지만, 정치권의 고질적인 문제인 공천 뒷돈 문제가 되풀이됐습니다. 이 사안을 확인한 기관은 중앙선관위였고, 검찰에 이를 수사해 달라고 의뢰하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동아일보는 신중하게 보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왜 동아일보가 특정 후보에게 불리할 수도 있는 보도를 했느냐는 황당한 음모론이 일기도 했습니다.

이주향 위원=후진적인 정치 풍토를 폭로하는 기사는 중요하게 평가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대선을 앞두고 각종 정치 기사가 쏟아지는데 언론이 시각을 바꿔서 보도하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대선 후보 검증에서도 정치에 인간의 향기를 입히는 보도가 필요합니다. 어쨌든 후보들은 관심의 대상 아닙니까.

김동률 위원=언론을 ‘제4부’라고 부르는 것은 감시기능이 있기 때문입니다. 전 국회의장이 한나라당 대표로 출마할 당시의 돈 봉투 사건이 불거진 지 1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정치권에서 돈거래가 횡행하는 것에 대해서 언론이 더욱 주목해야 됩니다. 사회가 민주화됐지만 정치권은 아직 후진성이 남아 있기 때문에 신문이 어젠다를 잘 설정해야 합니다.

한 스탠더드에디터=언론도 후보 검증 등 정치 기사에 많은 사람의 흥미를 일으키도록 다양한 접근을 할 필요가 있다고 느낍니다. ‘공천 뒷돈 문제’ 제기 당시가 올림픽 기간 중이어서 관심이 분산됐지만 좀 더 국민이 심각하게 받아들이도록 어젠다를 구성하는 것이 필요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이 위원장=그래도 동아가 이만큼 이슈를 끌고 갔다는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 언론이 개선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해 알리면, 대선 후보자들도 이런 논의를 피해 가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현재 새누리당에서는 출당시키는 걸로 덮으려는 움직임이 있는데 법적으로는 어느 정도의 제재가 가능합니까. 대법원도 공천 헌금을 징역형으로 처벌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 위원장=법 처벌은 정도의 문제이지 근본 해결책이 아닙니다. 조선시대부터 매관매직 풍토가 있었고, 광복 이후는 보스에게 잘 보이면 권력을 얻는 관행이 지금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직능대표 성격인 비례대표제도 또한 직능대표라는 의미는 없어지고, 정치 지도자의 힘에 의해 변질되다 보니 윗사람한테 갖다 바치는 이런 제도상의 허점이 결합되면서 아직도 공천 헌금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김 위원=저는 비관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청문회라는 제도 때문에 장차관을 하려는 사람들이 더는 투기를 하지 않는 풍토가 정착되었다고 하더군요. 다음 세대에서는 이런 문제들이 이슈가 되지 않을 겁니다. 요즘 신문마다 ‘공정 보도’를 외치지만 진정한 공정보도는 없다고 봅니다. 미국도 어떤 신문은 진보를, 어떤 신문은 보수를 지향하듯이 현실적으로 말 그대로의 공정보도는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이 위원=그렇더라도 ‘공정보도를 하겠다’고 주장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우리는 네 편도 내 편도 아니라는 선언 자체가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이인철 스탠더드에디터=후보 검증이라는 건 언론에 항상 딜레마입니다. 가장 큰 딜레마는 독자들이 정책 기사에 관심이 없다는 겁니다. 선거 기간 중 가장 안 읽는 기사가 공약을 검증하는 기사입니다.

이 위원장=언론이 ‘공천 뒷돈’ 문제를 지속적으로 다루면 대선주자를 비롯한 유력 정치인들이 이 문제에 대해 논의를 하고 제 나름대로 해답을 찾으려는 움직임을 보일 겁니다. 오늘 논의하는 주제는 진부한 것 같지만 그런 의미에서 미래 지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위원=공약 검증 기사를 어떻게 흥미롭게 다룰 수 있는지도 함께 고민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다른 얘기지만 요즘 안철수 교수에 대해 부정적 얘기들이 쏟아져도 지지율의 변화가 없는 것은 흥미롭습니다. 박근혜 후보 측의 상황이 좀 변해도 60, 70대의 지지율 변화가 없는 것도 한 번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사중 스탠더드에디터=누리꾼들의 정치 불신은 무척 강합니다.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시각차도 큽니다. 공천 뒷돈 관련 기사들이 쏟아지는데도 그중 어느 것도 많이 본 기사 10위 안에 올라온 적이 없습니다. 정치 부패 관련 기사에 달리는 댓글도 험악합니다. 정치 불신이 혐오로까지 이어지는데 이런 현상이 안철수 열풍의 배경이 아닐까요.

이 위원장=젊은이들은 정치인들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우선 믿게 만드는 풍토가 조성돼야 합니다. 후보들도 상대방 비방에 앞서 나부터 잘하겠다는 말을 먼저 해야 합니다. 유권자들도 정보가 공개돼 어느 정도 검증된 후보를 찍어야 하나, 아니면 신비적인 상태의 후보를 찍어야 하나 하고 혼란스러울 겁니다.

이 스탠더드에디터=일부 현상이지만 특정 후보를 눈치 보는 언론사도 있는 실정입니다. 입을 하도 안 여니까 어떻게 하면 입을 열게 할까 고민한다는 거죠.

한 스탠더드에디터=정치 부패가 근절되지 않고 있지만 절망적이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1987년과 1992년의 대선 선거비용은 조 단위로 알려져 있지만 지난 대선은 몇백억 원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많이 줄었습니다. 공천 뒷돈 비례대표 자리 값이 이번에 밝혀진 금액은 3억 원인데 5, 6공 시절엔 몇십억 원 아니었습니까. 공천제도나 운영체계 등도 계속해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되고 있기 때문에 좋은 변화가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김 위원=아마 10년 뒤에는 공천 뒷돈, 정치 부패 이런 이야기가 큰 이슈가 되지 않을 겁니다. 정치도 이제는 선진화된 한국에 맞게 변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이 스탠더드에디터=오세훈법이 정치자금 후원회 거품을 많이 걷어냈습니다. 이래 가지고 정치할 수 있느냐는 불평도 있었지만,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언론도 뭐가 잘못됐다고만 지적하지 말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 위원=미국에서 빌 클린턴 대통령이 여성과 스캔들을 일으켰을 때 클린턴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우리는 교황을 뽑은 게 아니라 대통령을 뽑은 거다’라고 했잖습니까. 특정인에 대한 20, 30대의 지지율이 높은 것도 대통령을 이제는 메시아가 아니라 ‘멘토’라고 생각하기 때문 아닐까요. 청문회를 보면 30년 전 문제도 들고 나오는데, 그 사람을 깎아내리기 위한 검증 시스템이면 사람들이 청문회를 안 볼 것 같습니다.

이 위원장=정치권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신문과 언론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라를 책임지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좋은 정치를 펼쳐 국민이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공약과 메시지를 제시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토론 주제는 상당히 의미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정리=김동원 기자 daviskim@donga.com  
하여라 인턴기자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독자위원회 좌담#공천 뒷돈#대선#정치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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