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대학생들의 첫사랑을 그린 영화 ‘건축학개론’이 400만 명을 끌어모은 데 이어, 최근엔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이하 ‘응답하라’)이 화제다. ‘응답하라’는 1990년대를 배경으로 부산에 살고 있는 남녀 고교생들의 학원 드라마다. ‘건축학개론’이 대학 캠퍼스를 배경으로 90년대를 불러냈다면, ‘응답하라’는 고교생들을 등장시켜 90년대를 추억한다(‘응답하라’는 시청률 1%만 넘겨도 대박이라는 밤 11시 케이블방송에서 평균 시청률 3%, 14일 방송은 최고 시청률이 4.56%나 됐다).
90년대 대중문화의 상징은 이른바 ‘빠순이’(광적인 팬)다. H.O.T, 젝스키스 등 아이돌 1세대가 처음 등장한 이 시대 팬들은 ‘나훈아’ ‘조용필’ 팬들과는 달리 팬클럽 회장을 중심으로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응답하라’는 지난주 방영분에서 90년대 그들에게 유명한 사건인 H.O.T와 젝스키스 팬클럽 간의 몸싸움을 재현해 70년대생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빠순이’뿐 아니다. DDR, 다마곳치, 삐삐, 아디도스(아디다스 짝퉁), 콜라텍, 불법복제카세트테이프를 팔던 리어카, 콜라독립815 같은 한정판 소품들은 ‘응답하라’의 또 다른 중요 출연진(?)이다. 게다가 “엄마가 전화 쓴대요, 이만”으로 끝나는 전화 접속 PC통신이라니!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유행했던 이것들을 지금은 찾아볼 수 없다. 요즘 인터넷에서는 90년대 소품 찾기 놀이가 한창이다. 통기타로 대표되는 7080세대의 복고 향수가 ‘90년대 복고’로 넘어가는 분위기다. “아빠의 복고는 ‘세시봉’이다. 그리고 나의 복고는 H.O.T다.”(‘응답하라’ 여주인공 성시원 대사)
대중 문화계에 일고 있는 ‘90년대 현상’은 이제 40, 50대 7080세대가 서서히 밀려나고 30대가 우리 사회 중심세대가 되고 있다는 징후가 아닐까.
쌍둥이도 세대 차를 느낀다는 한국사회에서 70년대생 문화에는 독특한 시대적 특징이 있다.
이들은 ‘우리’보다 ‘나’의 삶을 중요하게 생각한 첫 세대였다. 80년대를 붙들었던 이데올로기에서 놓여나 생각의 자유로움을 향유했으며 나만이 쓸 수 있는 통신기기(삐삐), 나만이 돌봐 줘야 하는 전자 애완동물(다마곳치)을 즐겼다. 영원한 인기를 누릴 것 같던 아이돌이 시시때때로 해체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좋아하는 대상이 나타나면 열렬히 사랑하되 언제든 바꿀 수 있는 ‘쿨’한 세대다. 풍요로운 시대에 태어났고 그 풍요가 영원하리라 믿었던 70년대생.
하지만 현실은 그들을 배반했다. 대부분 대학시절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인생은 설계되고 계획될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가난에서 벗어나 문화적 세례를 가득 받아 풍요롭게 자랐지만 어른이 된 순간 팍팍한 현실로 내던져져 느닷없이 궁핍과 마주한 세대라고 할까.
그러니 불과 10여 년 전 그들이 누렸던 문화적 풍요는 이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과거이자 ‘복고’인 것이다. 현실의 구질구질함이 생생할수록 과거는 아름답게 기억되는 것 아닌가. 마치 건축학개론의 첫사랑처럼 말이다. 추억하기엔 너무 빨리 찾아온 90년대 복고를 보면서 새삼 그 시절 아름다운 청춘이던 70년대생의 힘든 삶이 겹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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