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남북한이 통일을 이루어야 하는가를 요즈음의 젊은 세대에게 물어보면, 그 대답에 ‘민족통합의 시대적 과제’와 같은 정답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전쟁을 직접 겪은 세대나 어린 시절에 전쟁의 참화를 보고 자란 세대가 아닌 이들은, 꼭 남북통일을 해야만 하느냐는 질문으로 역습을 가해 오기도 한다.
필자는 이 도전적인 반문에 두 가지 설명을 한다. 오늘의 북한을 두고 그 잘못을 물어야 할 대상은 북한의 위정 당국이지 피해자인 인민이 아니지 않으냐, 그리고 그 북한 주민 가운데 자신의 가족이나 친지가 남아 있다고 생각해 보라. 하지만 이러한 대화는 때로 참 허망하고 슬프기까지 하다.
어쨌거나 동시대 현실에서 한반도를 배경으로 하는 모든 분야의 논의나 연구에 있어 북한은 이미 변수(變數)가 아닌 상수(常數)의 지위에 도달해 있다.
그동안 남북관계의 완강한 경색과 고착의 대립구도에 미세하지만 동시다발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초반부터다. 1985년에는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 이산가족 고향방문 및 예술공연단’의 교환 방문이 있었고, 1988년에는 남한에서 북한문학 자료의 연구에 대한 해금 조치가 있었다. 하지만 한반도 비핵화나 천안함·연평도 사건 등 대립과 갈등의 상황은, 우리가 종전(終戰)이 아닌 휴전(休戰)의 시기를 살고 있다는 사실을 명료하게 증명한다.
모든 길이 다 차단되었다 할지라도 단 한 곳, 숨쉴 곳이 있어야 한다. 바로 남북 문화교류, 의식적 차원의 교류이다. 사람이 빵만으로 살 수 없다면 정치는 눈앞의 빵이요, 문화는 그 삶의 길을 지탱하게 하는 정신이다.
북한의 문화, 특히 문학은 북한사회를 있는 그대로 투명하게 반사하는 거울과도 같다. 북한의 문학이 명실공히 당의 정강정책을 반영하고 그것을 인민대중에게 전파하며 또 교화하는 수단이라면, 북한사회의 모든 담화가 문학 속에 담겨 있는 실정을 이해할 수 있다.
근자에 필자가 3000쪽 분량의 북한문학 연구자료 총서 4권을 엮어 펴낸 이유도, 북한문학의 총체적 모습을 통해 북한사회를 좀 더 깊이 있게 살펴보고 그 바탕 위에서 남북한의 문화 및 민족통합의 앞날을 내다보자는 뜻에서다.
동시에 남북한을 중심에 두고 해외에 널리 퍼져 있는 미주 한인문학, 일본 조선인문학, 중국 조선족문학, 중앙아시아 고려인문학을 하나의 꿰미로 엮는 ‘한민족 문화권 문학’을 설정해 보자는 것이다.
이 한민족 디아스포라 문학의 구도를 두고 필자는 오래 전부터 ‘2+4 시스템’이라 호명했는데, 그 이후에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형성된 정치적 회의체인 ‘6자회담’이 지역에 있어서 그와 일치하는 것은,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의 세력이 정치와 문화에 있어 공히 동일한 지역적 기반을 가졌다는 의미가 된다.
우리와 유사한 형편에 있던 독일처럼 정치와 국토의 통합에 앞서, 수형자 교환 등 여러 사회적 접점을 확보하고 매스컴 교환을 비롯한 문화적 통합을 먼저 수행한 사례를 본보기로 삼을 수 있겠다. 민족의 미래에 대해 문화와 문학이 꿈꾸고 표현하는 구체적 이야기성의 표현은, 아마도 왜 통일을 이루어야 하는가를 묻는 다음 세대에게 가장 설득력 있는 답변이 되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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