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식물신품종보호동맹(UPOV)에 가입한 우리는 2001년 7월 장미가 품종보호 대상작물로 지정됨으로써 외국 품종에 많은 로열티를 내고 있다. 이에 대처하기 위해 1990년 초 농촌진흥청 원예연구소에서 장미 육종을 시작했고, 현재 장미연구사업단을 구성해 장미 품종을 육성, 보급하고 있다.
경기도농업기술원도 1997년부터 36개 품종을 개발했다. 새 품종이 나오는 데는 최소 5∼7년이 걸린다. 유전자 수집, 교배, 특성 검정, 품평회, 농가 실증, 시장성 검증 등 많은 시간이 걸리고 그만큼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
만들고자 하는 특성을 가진 장미의 유전자를 수집하려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국내외 꽃시장을 수시로 드나들어야 한다. 향기가 강하다든지, 꽃 색깔이 특이하다든지, 가시가 없다든지, 꽃 수명이 오래간다든지 등 기존 품종이 갖고 있지 않은 특성을 가진 귀한 장미 유전자를 수집해 교배한다.
교배는 섬세한 작업이다. 4∼6월 오전에 장미꽃 암술머리에 다른 꽃의 꽃가루를 묻혀 씨앗을 만들고, 인위적으로 유전자 교환이나 변이를 유도해 새로운 꽃을 탄생시킨다. 장미의 경우 평균 결실률은 60% 정도고 발아율도 40% 내외다. 그만큼 새로운 종자를 얻는 데 많은 노력이 든다.
경기도농업기술원에서는 매년 8000개의 꽃에 인공수정을 시켜 5만 입(粒·종자를 세는 단위)의 종자를 얻는다. 꽃이 크고 모양이 아름답고, 꽃수명이 오래가고, 줄기 길이가 길고, 수확량이 많고, 병충해에 강한 우수한 계통을 선발해 3∼5년 동안 키운다.
최종 선발을 할 때는 농가와 종묘업체, 유통 상인, 해외 바이어 등 각 분야 장미 전문가들이 모여 엄선을 해서 2, 3개 품종을 개발하게 된다. 이 모든 과정은 1ha(약 3000평)의 온실에서 이뤄진다. 장미 한 품종에는 온실 안에서 묵묵히 수고해 준 많은 손길들의 땀과 정성이 숨어 있다.
장미에는 가시가 있다. 농가에서는 이 때문에 늘 두꺼운 가죽장갑을 끼고 작업한다. 장미 가시는 꽃잎과 잎에 상처를 입혀 품질을 손상시킨다. 그래서 개발하기 시작한 게 바로 ‘가시 없는 장미’다.
경기도농업기술원이 2010년 육성한 가시 없는 장미 ‘필립’은 2006년 줄기에 가시가 적은 ‘GR99-21-90’ 계통을 모본(母本·씨앗을 맺는 엄마나무)으로 하고 파스텔 분홍색 ‘미라바이’ 품종을 부본(父本·꽃가루를 제공하는 아빠나무)으로 개발이 시작됐다.
인공수정으로 생긴 씨앗을 파종해 2007년에 실생(實生·씨앗에서 싹이 난 후 자라서 된 어린 나무)을 길러 꽃 빛깔과 형태가 우수한 53계통을 예비 선발했다. 이어 2010년까지 특성 검정과 품평회를 거쳐 ‘GR06-13-50’ 계통을 최종 선발해 ‘필립(Feel Lip)’ 이라는 품종 이름을 붙여주었다.
‘필립’은 지난해 본격적으로 경기 고양 파주, 경남 김해, 전북 전주 등 전국으로 보급돼 생산되고 있다. 특히 고양의 변유섭 농가와 김해 조용준 농가의 ‘필립’은 꽃 가격(‘필립’ 장미 10송이에 6000원, 일반 장미 5000원)도 높아 소득이 올랐다고 한다. 지난해부터는 해외에 ‘딥퍼플’이라는 이름으로 팔리는데 에콰도르, 콜롬비아, 케냐 등 9개국 32개 농장에서 로열티를 받고 있다. 지난해 네덜란드 국제화훼무역박람회(IFTF)에서 딥퍼플 등 우리 장미 다섯 품종이 세계 유명 장미들과 나란히 전시된 모습을 보고 눈물이 핑 돌았다. 앞으로도 매력적인 장미 육성을 위한 연구자들의 땀과 열정은 계속될 것이다. 농가, 상인, 소비자 모두 ‘장미’로 더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