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정양환]꼬마 ‘고래잡이’ 어떻게…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8월 31일 03시 00분


정양환 국제부 기자
정양환 국제부 기자
아이가 커가니 병원 갈 일이 잦다. 딱히 아픈 데가 없어도 예방접종이 상당하다. 하지만 애 몸에 주사바늘 꽂는 건 영 익숙해지질 않는다. 하긴 아파하는 자식 모습을 뉘라서 좋아할까. 근데 최근 병원에서 아기를 어르다 살짝 고민이 생겼다. 이 녀석, 더 센 게 있는데…. 포경(包莖) 수술은 어떡하나.

의학용어로 환상 절제술인 포경수술은 고래잡이(포경·捕鯨)와 발음이 같아 흔히 ‘고래잡이 수술’로 통한다. 이 수술이 최근 독일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달 말 쾰른 지방법정에서 14세 이하에 대한 포경수술을 전면 금지했기 때문이다. 부모가 원해도 아이는 자신의 ‘신체적 고통’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 그러니 어느 정도 나이가 찼을 때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판결의 요지다. 소송을 제기한 시민단체들은 “어린이 인권 역사의 새로운 도약”이라며 기뻐했다.

유대계와 무슬림은 난리가 났다. 수천 년 이어온 종교적 전통인 ‘할례(割禮)’를 부정당했으니 그럴 만하다. 유대교는 출생 8일째 날, 이슬람교는 보통 여섯 살 전에 의식을 치른다. 독일 랍비 대표인 요나 메츠거는 “인간이 신의 영역을 침범했다”며 분노했다. 비난이 들끓자 독일 정부는 “의사가 할례를 참관하는 방식 등 협상 여지가 있다”며 반발 여론을 달랬다.

사건은 독일에서 터졌지만 파장은 미국이 더 컸다. 유럽은 종교적 이유가 아니면 포경수술을 많이 하지 않는다. 영국에선 성인남성 가운데 8%만 아픔을 겪는다. 그러나 미국에선 약 75%가 포경수술을 받을 정도로 대중적이다. BBC뉴스에 따르면 나이지리아(95%) 필리핀(90%)에 이어 가장 많다. 참고로 한국은 60% 정도로 5위권을 형성한다.

미국에선 워낙 당연시했던 일이라 논란 자체가 당혹스럽다. 독일 판결 직후 미 소아과연합은 “통계적으로 포경수술을 받으면 에이즈 감염률이 낮다”는 상당히 주관에 치우친 듯한 논평을 내놓았다. 특이한 건 아버지들의 반발이 훨씬 거셌다는 점. 아들의 신체가 자신과 다르길 원치 않는 심정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미국도 포경수술 문화가 그리 길진 않다. 책 ‘세상에서 가장 논쟁적인 수술의 역사’에 따르면 겨우 140년 전 미국의학협회 창립자인 루이스 세이어 박사가 주창하며 인기를 얻었다. 책엔 한국에선 6·25전쟁 전후 미군이 전파했다고 나와 있다. 미국에서도 어린이 수술 금지를 요구하는 진영은 “포경수술이 매독 간질을 막는다던 논리는 현재 거짓으로 밝혀졌다”며 “합리적 근거 없이 아이에게 고통을 주는 악습은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미국 부모들이 이 수술을 애써 고집하는 덴 ‘안타까운 사연’이 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대다수 남자아이가 포경을 제거하는 사회에서 그렇지 않은 아이는 따돌림을 당할 확률이 높다. 실제로 그런 사례가 여럿 보고 되기도 했다. 더글러스 디케마 워싱턴주립대 교수는 “정체성 형성기에 아이들은 자신과 신체가 다른 대상에게 적대감을 품는다”고 말했다.

논박은 끝이 없다. 어린이 인권은 소중하다. 위생이나 왕따 방지도 필요하다. 다만 하나, 포경수술 찬반으로 뜨거운 서구사회가 아프리카의 여성 할례를 얼마나 공격해왔는지 떠올려보자. 개인적으로도 지양할 관습이라 보지만, 타인의 허물엔 앞뒤 재지 않고 열을 올리는 자신들부터 되돌아보란 소리다. 그나저나, 우리 애는 어쩌나. 남 걱정할 때가 아니다.

정양환 국제부기자 ray@donga.com
#정양환#포경 수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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