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너무 어둡고 칙칙합니다. 자세한 건 체크해 뒀으니 참고하시고요.” 전화를 받은 사람의 당황스러운 대답. “나 레오나르도 다빈치야!”. 상대방이 고쳐 달라고 주문한 그림은 다름 아닌 ‘모나리자’. 이 ‘웃픈(웃긴데 슬픈)’ 장면은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만화다. 등장인물들은 ‘갑을’ 관계.
계약서상으로는 계약 당사자인 ‘갑’과 ‘을’이지만, 현실의 갑과 을은 ‘슈퍼 갑’과 갑을병 ‘정’으로 불리는 상하 주종관계다. 피카소, 고흐, 다빈치도 꼼짝 못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갑의 힘(?)이다.
고용주와 알바생의 관계는 어떨까? 고용주 입장에서 알바생은 언제든 대체 가능한 존재다. ‘을’인 알바생은 ‘슈퍼 갑’이자 ‘클라이언트’인 고용주를 언제나 ‘매우 만족하게’ 모셔야 한다. 고객 만족조사 결과가 좋지 않으면? 최저임금보다 낮은 시급은 늦게 지급되거나 지급되지 않는다. 돈만 못 받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폭언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까지 수난 옵션은 다양하다.
알바 구인 전문 사이트를 보자. 홈페이지, e메일, 내사 접수, 문자메시지, 카카오톡 실시간 상담까지 상시 지원이 가능하다. 하지만 언제든 뽑는다는 것은 언제든 잘릴 수 있다는 말이다. 고용 형태도 도급사 소속, 파견직, 용역직, 계약직 등 정규직만 빼고 다 있다.
누구 말대로 “눈높이만 낮추면” 일자리는 많다. 그렇다면 일자리의 실상은 어떨까? 당신은 때때로 60초 안에 음식을 만들어 대령하거나, 30분 안에 배달을 완료할 것을 요구받을 것이다. ‘주문하신’ 음식이 “나오셨다고” 손님을 부를 때 마이크를 써서는 안 되고, 빵가게 출근 첫날부터 장갑도 끼지 않고 도넛과 꽈배기를 튀겨야 한다. 하루 종일 지하 주차장에 서서 “안녕하세요, 어서 오십시오”를 외치며 90도 각도로 인사하거나, “사랑합니다, 고객님”을 외쳐야 한다. 욕을 먹어도 생글생글, 20대다운 상큼발랄한 미소로 응대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지난해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알바 대학생 54만 명의 평균 월급은 89만 원이고, 주당 42.9시간을 근무하는 전업 알바생조차 월평균 107만 원밖에 벌지 못한다. 게다가 최저임금인 4580원조차 못 받는 학생이 17만 명(31.9%)이나 된다. 자영업자와 프랜차이즈가 증가한 만큼 알바는 늘어났지만 비싼 등록금 때문에 알바를 하고, 알바를 하다 보니 스펙 쌓을 시간이 없고, 스펙이 없으니 취직이 안 되고, 결국 계속 알바를 할 수밖에 없는 20대는 줄지 않고 있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20대와 10대 알바생은 논의 선상에서 아예 제외다. 대졸 실업자 챙기기도 바쁜 정부는 고졸 20대와 대학에 가지 않을 10대의 노동실태에 대해서는 관심도, 파악하려는 의지도 없다.
사실 20대 알바생의 문제는 40, 50대 자영업자 소상공인 사장님들의 팍팍한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돈 벌어서 월세 내고 본사에 로열티 내고 재료비 쓰고 알바비 주면 남는 게 없는 사장님의 삶도 고단하긴 마찬가지다. 물의를 일으키고 중단된 ‘30분 책임 배달제’로 돈을 번 곳은 마케팅을 진행한 본사뿐이다.
사실 몇 년 전부터 손님이 적은 시간에 강제로 휴식을 주는 이른바 ‘꺾기’가 유행하는 등 알바생들이 받는 비인간적이고 비상식적인 대우는 익히 알려져 왔다. 하지만 저항하거나 공론화하기 어렵고, 의지가 있어도 하소연할 곳도 없다. ‘그만두면, 옮기면, 안 보면, 피하면 그만’이다.
지금도 누군가의 자녀이자 동생이자 친구인 10, 20대 알바생들이 주차장과 마트와 편의점과 영화관과 빵집과 커피숍에서 소리 없이 일하고 있다. 우리는 언제까지 그들을 투명인간 취급할 것인가?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차라리 태풍은 좋겠다, 어디로 갈지 진로라도 정해져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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